낙태논쟁에 관하여, 몇몇 아쉬운 논리들

날개4호 2017.12.10 11:09 조회 수 : 65

낙태를 죄로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어차피 그 사회의 가치판단에 달린 일이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로 결정이 이루어질 일이죠. 우리사회는 과거에 모자보건법이라는 법제정을 통해 일정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습니다. 바로 낙태의 제한적 허용이죠(물론 이것이 사회적 합의가 아니라는 주장도 할 수 있겠죠. 비상적인 방법에 의한 것이니까요).

모자보건법에 대한 문제점은 낙태죄 찬반 양측에서 주장합니다. 모자보건법에 대해 반대/개정을 요구하는 이유는 크게 둘인데, 하나는 국가가 무언가를 통제한다는 느낌이 강하다는 것이고(가령 우생학적이라는 표현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즉 정부의 목적에 의한 통제라고 보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제한적 허용도 못 참겠다는 것이고(이건 주로 종교계).


어쨌든 그런데 낙태죄에 대하여 의미 없는 주장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자위 하는 거나 낙태나. 자위 하니까 남자들도 처벌해라"라는 것인데요. 이건 뭐...낙태죄 논란이 어떤 배경에서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르는 무지한 애들의 헛소리죠. 우리가 생리와 낙태는 별개로 봅니다. 사산과 낙태도 별개로 보죠. 낙태라는 개념의 범위가 있는데 그 범위에 해당하지도 않는 자위를 가지고 와서 얘기해봤자 낙태죄 폐지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고 오히려 조롱만 받습니다.

둘째로 "낙태가 죄면 죄고 아니면 아니지, 지금도 제한적 허용이랍시고 몇 가지 경우에 허용하면서 왜 낙태죄라고 있냐"라는 식의 주장인데요. 가령 살인죄는 살인을 금지하도록 합니다. 하지만 군인들이 전투에 나가서 상대 병사를 죽이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당한 행위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낙태죄가 있지만, 모자보건법이라는 법률에서 허용을 해주기 때문에 정당한 행위로서 위법성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셋째로 "어차피 할 사람은 하는데 낙태죄로 해봤자 무슨 소용이냐"라는 것인데요. 이것도 사실 낙태죄 폐지를 위한다면 할 소리는 아닙니다. "어차피 절도할 인간은 절도할 텐데 뭐하러 절도죄를 놔두냐"라는 소리와 동급입니다. 어차피 할 것이라는 개념이 죄가 불필요하다는 개념으로 이어질 수는 없어요. 어차피 사람 죽일 놈은 죽이고, 때릴 놈은 때릴 텐데 뭐하러 형법이 필요할까요. 기본적으로 이와 같은 논리를 주장할 때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주장해야 합니다. 금주법과 같이 사문화, 혹은 간통죄와 같이 수범자가 준수가능한 범위라는 측면을 논하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내용이지, 앞뒤 다 잘라내고 이것만 주장하면 곤란합니다.

넷째로 "태아가 사람이면 살인죄로 처벌할 것이지 왜 낙태죄를 따로 정해놓느냐"라는 것인데요. 이건 사실 형법에의 무지에 가까운 소리입니다. 태아와 사람이 동일한 지에 관해서는 이론이 있는데다가(즉 낙태 반대하는 쪽이 무조건 사람이라서 반대한다는 것이 아님. 사람으로 간주한다거나, 사람으로서의 연속성이 있다거나...), "어차피 사람 죽는건데 뭐하러 살인죄와 상해치사를 구분하느냐" 정도의 소리라서요. 이런 소리를 해봤자 낙태죄 폐지 여부에는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형법에는 보통살인죄 - 영아살해죄 - 낙태죄를 각기 다른 죄목으로 규정하고 있어요. 영아도 사람인데 왜 별도의 죄로 나타낼까요? 별도의 규범력을 발생시키는 조문을 두고 피해 대상의 대분류가 같다면, 달리 처벌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낙태죄를 폐지하고 싶으면, 결국 낙태라는 행위가 형법으로 규제할 만큼의 불법성이 없다고 주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위 주장들은 낙태죄의 불법성을 부정하는 주장이 아니라, 낙태죄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주장이기 때문에 낙태죄 관련 논쟁에서는 오히려 낙태죄 찬성파들의 좋은 먹잇감입니다.

지금 여성우월, 남성혐오를 주장하는 애들이 머리가 멍청해서 저런 식의 표현들을 하고 있는데, 저것들은 낙태죄 폐지에 아무런 영향도 못 미칠 뿐만 아니라 비웃음만 당하는 논리인 것이구요.

결국 낙태죄는 태아의 개념,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범위, 낙태행위의 불법성에 대한 진지한 논의 속에서 사회적 합의가 나와야 합니다. 때문에 낙태죄 논쟁에서 법학자들이 태아의 개념, 자기결정권 같은 것으로 논쟁을 하는 것이구요. 그런데 위와 같은 헛소리들은 그와 같은 논쟁에 도움은커녕 오히려 낙태죄 존치론자들이 논쟁에서 좀 밀린다 싶을 때 "어휴 머저리 xx들, 어떻게 저런 한심한 소리를 하냐"라면서 상대를 조롱하고+숨을 고를 타이밍을 줍니다.

낙태죄를 폐지하든, 존치하든 그것은 사회적 합의에 달린 일이기 때문에 저는 무엇이든 상관은 없는데(사실 심적으로는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허용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말한 논리들은 낙태죄 폐지를 얘기하려고 주장하는 것이지만, 실지로는 폐지에 하등의 도움을 주지 않는 논리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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