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해리스 - 무신론자 선언문

gigantul 2010.03.01 09:50 조회 수 : 11205

다음 글은 무신론 관련 여러 저서를 지은 샘 해리스가 2005년 12월 Truthdig라는 사이트에 올린 글입니다.
그당시 읽고 매우 감명깊어서 번역을 시작했지만, 해리스의 표현력이 아주 다양하고
양도 많아서 쉬엄쉬엄 하다가 지금까지 왔습니다.
양이 많지만, 읽어보면 괜찮을것 같아서 올립니다.



무신론자 선언문


 어 린 여자아이가 세계 어딘가에서 지금 한 남자에게 납치되었습니다. 곧 그는 그녀를 강간, 고문과 살해할 것입니다. 이러한 끔찍한 비극이 지금 일어나고 있지 않다면, 이러한 일은 몇 시간 이내이거나, 아무리 길어도 며칠 이내에 일어날 것입니다. 이러한 추측은 60억 인구를 포괄하는 통계학적 법칙에 의해 드러납니다. 똑같이 통계에 의하면, 이 여자아이의 부모는 전지전능하고, 사랑으로 가득한 신이 이 가족을 돌본다고 믿습니다. 이들의 믿음이 옳은 것인가요? 이러한 믿음이 좋은 것인가요?


아닙니다.


무 신론의 모든 요소는 이 대답에 함축되 있습니다. 무신론은 철학이 아닙니다. 무신론은 세상을 보는 관점조차도 아니며, 단지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지 않겠다는 표현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 명백한 사실 들이 무시되는 것이 당연시 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명백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검증하고 재검증하고 토론되야 하는 세상에서 말입니다. 이러한 일은 댓가가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일은 건방지고 무신경한 일로 치부됩니다. 게다가, 이러한 일은 무신론자가 원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무도 자신을 비(非)점성술사니 비연금술사로 표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사이비들을 부정하는 사람들에 대한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무신론이라는 단어는 원래 존재하지도 않았어여 합니다. 무신론은 종교의 독단적인 주장에 대해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들이 내는 반론에 불과합니다. 무신론자는 단지, 2.6억명의 미국인(인구의87%)들이 신의 존재에 대해 절대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신이 자애롭다는 주장에 반해 끝없는 순진무구한 사람들의 이유없는 죽음을 생각할때, 신앙에 대한 증거를 요구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무신론자들 만이 지금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올림푸스 산의 신들과 별로 다를 게 없는 신을 믿습니다. 미국에서는 어떠한 사람이건, 얼마나 뛰어난 사람이건간에, 이러한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척을 하지 않으면 선거에 당선 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 나라(미국)의 정책은 중세시대에나 어울릴법한 종교적 타부와 미신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절망적이고 끔찍하며,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이렇게 많은 위험이 없었다면 이러한 일은 단지 우스꽝스러울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것 – 좋은것이건 나쁜것이건 – 이 변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잃고, 자식은 부모를 잃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한순간에 떠나보내고, 다시 만나지 못합니다. 친구들은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바쁘게 서로를 떠나보냅니다. 이러한 삶은, 크게 보면 끝없는 상실의 연속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세상사람들은 이러한 것에 대한 치료법이 있다고 믿습니다. 옳게(꼭 도덕적이지는 않더라도 고대의 믿음과 판에 박은 모습으로) 산다면 죽고나서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육체가 결국 망가지는 때가 오면, 우리는 이러한 육신의 짐을 벗고 우리가 사랑하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러 여행을 떠난다고 말입니다. 당연히 랍비들과 너무 합리적인 사람들은 이러한 세상에서 추방되고, 불신을 멈춘 사람만이 이러한 영생을 누릴수 있습니다.


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이 놀라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핵융합 에너지는 태양을 불타오르게 하고, 태양의 빛은 지구에 내려와 모든 진화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천국은 우리가 상상하는 케리비안 크루즈 여행의 겉모습에 불과한 모습입니다. 아마도,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데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천국과 천국의 문지기인 신을 자신의 이미지로 만들어낸 것일 겁니다.


뉴올리언즈의 카트리나 허리케인을 생각해 보십시오. 10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수만의 사람들이 재산을 잃었고, 백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주해야 했습니다.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즈를 습격했을 때, 뉴올리언즈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애롭고, 전지전능한 신을 믿고 있었다고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왜 신은 허리케인을 발생시켜 도시를 박살냈을까요? 당연히 신은 높아지는 수위를 피하며 다락방에 올라가 천천히 익사하던 노인들과 여성들의 기도를 들었을 텐데 말입니다. 이 사람들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온 생애에 걸쳐 기도를 올린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신론자들 만이 명백한 사실을 시인할 용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 이 불쌍한 사람들은 상상의 친구와 대화하다 죽은 것입니다.


당연히  이 전후무후한 크기의 폭풍우가 뉴올리언즈를 덮친다는 경고는 충분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과학의 이해에 대한 부족이었습니다. 카트리나에 대한 경고는 침묵하는 자연으로부터 기상학자들과 위성이미지를 통해 뽑아낸 것이었습니다. 신은 아무에게도 자신의 뜻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뉴올리언즈의 사람들이 신의 은총이 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면, 아무도 살인적인 허리케인의 바람이 얼굴을 후려칠 때까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포스트 지에 따르면 카트리나 생존자의 80%가 이 경험을 통해 신에 대한 신앙이 더욱 강해졌다고 답했습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즈를 집어삼키고 있을 때, 1000명에 달하는 이슬람 시아파 성지순례자들이 이라크에서 밟혀 죽었습니다. 이 성지순례자들이 코란의 신을 믿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들의 삶은 절대진리인 신의 존재에 중심을 두고 정리되어 왔으며, 여성들은 베일을 쓰고 다닙니다. 그들은 신의 말에 대해 다른 해석을 해 왔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죽입니다. 마지막 생존자들이 이 비극을 겪고 신앙을 버린다면 좋겠지만, 그 사람들은 신의 은총에 따라 살아남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무신론자 만이 끝없는 살아난 사람들의 자만과 자기 기만을 깨닫습니다. 무신론자 만이 ‘신이 자신들만을 구원하였다는 생각, 그와 동시에 유아들을 침대에서 수장시키는 그 신이, 자신들을 구원하였다는 생각’ 이 얼마나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인지 알고 있습니다. 무신론자만이 지겹도록 들어온 영생의 환타지를 통해 세상의 고통을 감추려는 생각을 거부합니다. 무신론자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습니다. 무신론자들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특별히 타당한 이유없이 그들의 행복을 잃어가는 것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얼마나 거대한 재앙이 일어나야 사람들이 신앙을 버릴 수 있을 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태인 학살로도 믿음을 져 버릴 수 없었습니다. 르완다에서 신부들이 메세드(칼의 일종) 을 들고 학살을 일삼을 때에도 사람들은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20세기동안 5억명의 사람들, 그 중 대부분이 영아인 사람들이 천연두에 걸려 죽어갔습니다. 신의 뜻은 역시 알 수 없습니다. 어떠한 사실도, 아무리 불행한 사건이라도 신에 대한 감사로 받아들입니다. 신앙에 대해서는 우리는 너무나 관대하게 받아들입니다.


당연히, 신자들은 모든 세상의 고통은 다른 신이 한 짓이라고 종종 설명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동시에 신이 전지하고 전능하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이제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당연히 신학의 고전적인 문제로, 이 문제는 답이 이미 나와 있습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이 악명높은 재난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거나, 신경쓰지 않습니다. 신은, 따라서, 무능력하거나 사악합니다. 지금쯤 되면 신앙이 깊은 독자들은 다음의 전환을 시도할 것입니다. 신은 인간의 도덕 관점으로 판단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인간의 도덕 관점은 신자들이 신의 선함을 주장하는 기준이었습니다. 게다가 동성애나, 기도에서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가, 등의 사소한 것에나 신경쓰는 신은 그만큼이나 수수께끼입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아브라함의 신은 창조를 이룬 신에 어울리지 않을 분더러, 인류에도 적합하지 않은 신입니다.

당 연히 다른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제일 이성적이고 불쾌하지 않은 가능성 말입니다. 바이블의 신은 허구에 불과합니다. 리차드 도킨스가 깨달았듣이, 우리는 제우스나 토르에 관한 신에 대해서 무신론의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무신론자들 만이 바이블의 신 또한 다를게 없다는 것을 깨달은것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무신론자 만이 심오한 고통에 대해 꾸밈없이 받아들이고, 동정합니다. 우리가 죽고 사랑하는 모든것을 잃는다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이러한 일은 듣기 싫을 정도로 끔찍한 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생전에 이유없이 고통받기도 합니다. 세상의 말할 수 없이 큰 고통의 많은 부분은 종교에 의해 자행되어 왓습니다. 종교전쟁, 종교적 증오, 종교적 분열, 종교적 허구 –이러한 것들이 무신론을 윤리적이고, 지적인 필수요소로 만듭니다. 하지만 사회의 작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무신론자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이유만으로, 주변 사람들의 허구적인 삶에서 부끄럽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신앙의 성질


최근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22%가 근 50년 이내에 예수가 재림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다른 22%의 사람들은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아마도 매주 1회 이상 교회에 가는 44%의 사람들일 것이며, 신이 유태인들에게 이스라엘을 약속했으며, 아이들에게 진화론을 더이상 가르치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부시 대통령이 잘 알고 있듯이, 이러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가장 잘 협동하며 열성적인 유권자들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시각과 편견은 모든 국가의 중요한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진보진영 또한 이러한 잘못된 것을 배워서 바이블을 인용하고,  어떻게 하면 종교적 성향만으로 투표를 하는 유권자들의 환심을 살까 궁리하고 있습니다. 50%이상의 미국인들이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매우 부정적’ 이거나 ‘부정적’ 인 생각을 가진다고 합니다. 미국인의 70%는 대통령 후보가 종교에 열성적인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이성은 미국 정부의 하위 부분인 학교로까지 내려왔습니다. 미국인의 28%만이 진화론이 사실이라 생각하고, 68%는 사탄이 실존한다고 믿습니다. 이 정도의 무지는, 육중한 초강대국의 머리와 내부를 지배하였을때, 전 세계의 문제가 됩니다.


종교적 근본주의는 똑똑한 사람 모두가 비판하기 쉽지만, ‘중도적인 신앙’이라 불리는 것들은 우리 사회에서 엄청난 특혜를 누립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에서 조차 말입니다. 아이러니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근본주의자들이 부족한 증거와 이론으로 그들의 신앙을 정당화하는 반면-최소한 노력이라도 하는-에, 중도주의자들은 믿음이 주는 좋은 결과물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성경이 진실로 이루어져서 신앙을 갖는다고 하지 않고, 그들은 ‘종교가 삶에 의미를 주기 때문에 믿는다고 말할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다음날 수십만의 사람들이 쓰나미로 인해 죽었을 때, 근본주의자들은 이 참혹한 사건을 신의 심판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신은 낙태, 우상숭배와 동성애와 같은 악에 대한 간접적 메세지라고 했습니다. 윤리적으로 말이 안되지만, 이러한 해석은 특정 가정을 더했을 때에는 어찌보면 이성적입니다. 중도주의자들은, 그에 반해 신과 관련되었다고 연관짓기를 거부합니다. 신은 완벽한 미스테리이며, 단지 황폐한 악에 대한 위로의 역할밖에 하지 못합니다. 동남아 쓰나미와 같은 엄청난 재앙이 일어났을때, 중도의 신앙은 사탕발림과 무심한 헛소리만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량한 사람들은 진실하게 믿는 신자들보다 이런 허무한 이야기들을 믿는것을 선호합니다. 큰 재앙들 가운데서 중도적인 신학이 강조하는 심판이 아닌 신의 자애는 확실한 미덕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물에 불은 시체를 바다에서 건져낼 때에 표현되는 것은 신이 아닌 사람들의 자애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천의 아이들이 어머니의 품에서 앗아져 익사할 때에도 중도주의 신학은 이 위치-가장 적나라한 도덕적 겉치례-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심판의 신학이 이보다 더 논리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의 뜻은 절대 헤아릴 수 없지 않습니다. 이 참혹한 사건에서 한가지 헤아릴 수 없는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는 수 많은 남녀가 이러한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으며, 이것이 도덕의 이상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중도주의자들이 말하는 ‘이성적인 사람도 신을 믿음으로서 행복과 죽음에 대한 안정, 또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완벽히 터무니없는 이야기이다. 이 부조리는 ‘신’이라는 단어를 다른 위안을 주는 단어로 바꾸면 명백하게 보입니다. 예를들자면, 마당에 냉장고만한 다이아몬드가 묻혀있다고 믿고 싶어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당연히 이러한 생각을 믿음으로서 기분이 굉장히 좋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중도주의자들과 비슷한 예를 타르며 다음과 같은 고집스런 말을 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에게 왜 마당에 전 세계에서 발견된 다이아몬드보다 수천배나 큰 다이아몬드가 있다고 믿냐고 묻고 그가  “이 믿음은 제 삶에 의미를 주니까요” 또는 “우리 가족들은 주말에 이 땅을 파는것을 즐기고 있어요” 또는 “나는 우리 마당에 냉장고만한 다이아몬드가 묻히지 않은 세상에서 살고싶지 않아요” 이렇게 대답한다면 이러한 대답은 어이가 없습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이런 대답은 바보거나 미친 사람의 대답일 것입니다.


우 리는 파스칼의 논증이나, 키에르케고르의 변증법, 또는 다른 철학적인 사기논증이 왜 말이 안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는 것은 신의 존재가 자신과 어떤 관계가 있으며, 그 존재 자체가 믿음의 이유가 된다는 것을 믿는것입니다. 당연히이러한 믿음은 이러한 질문(신의 존재에 대한) 자체와 개개인의 믿음에 대한 용인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종교적인 믿음, 세상의 이치에 대한 믿음은 다른 믿음들과 비교할 때에 확연히 드러납니다. 이러한 이성과 죄악이 대치되는 일에 대해서 근본주의자는 확실히 이해하고 있는 반면, 중도주의자들은 거의 당연한 듯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성과 신앙의 비호환성은 인간의 사고에 따른 당연한 사실로 수세기 동안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믿음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던지 그렇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떠한 종류의 사람이건 이성의 타당성을 믿으며 가능한 한 최대한 이유와 증거를 찾습니다. 이성적인 의문이 신앙을 지지할 때에는 언제나 환영받습니다. 이성적인 의문이 신앙을 위협할 때에는 비웃음을 삽니다. 어떠한 때에는 이 두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기도 합니다. 종교적 교리에 대한 증거가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또는 교리에 어긋나는 증거가 존재할 경우에는, 신자들은 “믿음”으로 치부하며 넘어가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이유를 댑니다. (예를 들자면 “신약의 구절들이 구약의 구절을 재확인하기 때문입니다”, “창문에서 예수의 형상을 보았어요”, “기도를 올렸더니 우리 딸의 암 증상이 완화되었어요”). 이러한 이유들은 대체적으로 타당하지 못하지만, 이유가 없는 것보다는 나은 수준입니다. “신앙”이란 것은 이성이 더이상 통하지 않을 때에도 믿음을 유지하기 위한 면허증에 불과합니다. 비호환적인 종교적 믿음들로 인해 박살난 이 세상에서, 역사의 종말과 영혼의 불멸을 논하는 철기시대적인 신의 개념이 점점 나라를 침식하는 이 나라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들을 게으르게 이성적인 부분과 신학적인 부분으로 나누는 일은 더이상 방치할 수 없습니다.
 
신앙과 친절한 사회


신 자들은 무신론이 20세기에서 가장 큰 범죄들을 저질렀다고 종종 얘기합니다. 히틀러, 스탈린, 모택동, 폴포트의 정권은 어느정도 각각 비종교적인것이 사실이지만, 이성적인 정권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연설들은 인종, 경제, 국가주의, 역사, 또는 반지성주의의 망상에 빠진 설교와 조금 다를 뿐입니다. 여러가지 부분에서는, 종교가 이러한 부분에서도 과실이 있습니다. 유태인 학살을 생각해 보십시오. 나치 유태인 소각장을 만들어낸 것은 중세시대 기독교에서 유래된 반유태주의입니다. 수세기동안 독일 신자들, 그중 믿음이 가장 강한 신자들은 유태인들을 최악의 이교도들로 분류했고 사회악들의 대부분을 그들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독일에서 발생한 유태인들에 대한 증오는 대체적으로 세속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었지만, 종교에 의한 유태인들에 대한 이미지 악화는 계속되어 왔습니다. (바티칸은 1914년도까지도 신문에 유태인 비방을 하였습니다.)

아우슈비츠, 굴락(소련 수용소), 킬링필드는 사람들이 믿음에 대해 비판적인 사고로 충만해서 생긴 일이 아닙니다. 반대로, 이러한 비극은 어떠한 타당하지 않은 세속적인 이상주의의 위험에 대해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당연히 말 할 필요도 없이, 종교적 신앙에 관한 비판은 무신론의 교조(도그마)에 무조건적인 따름에소 오는것이 아닙니다. 무신론자가 보이고자 하는 문제는 다름이 아니라 교조(도그마) 자체의 문제입니다. 모든 종교들이 필요 이상으로 가지고 있는 도그마 말입니다. 역사상 어떠한 사회도 사람들이 너무 이성적이라 문제가 생긴 사회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미국인이 종교를 없에는 것은 불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하는 반면에, 많은 선진국은 벌써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였습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어쩔  수 없이 고대의 종교적인 소설에 의지해 삶을 이루어나가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소위 “신(神) 유전자”는 왜 다른 선진국의 국민들이 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른 대부분의 선진국들의 무신론자 비율은 종교 없이는 도덕이 없다는 이론을 반증합니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호주, 캐나다, 스웨덴, 스위스, 벨기에, 일본, 네덜란드, 덴마크, 영국과 같은 나라들은 지구에서 가장 비종교적인 나라입니다. UN의 인간개발보고서(05)에 따르면 이 나라들은 기대수명, 문맹율, 개별국민소득, 교육달성, 양성평등, 살인범죄율, 영아사망율에 따르면 가장 건전한 나라입니다. 이와 반면해 인간 개발 하위 50위의 나라들은 확고히 종교적인 나라입니다. 다른 분석들 또한 똑같은 내용을 말합니다. 미국은 부유한 민주국가들중 특이하게도 종교 직역주의와 반(反)진화론이 강한 나라입니다. 또한 살인범죄, 낙태, 10대 임신, 성병전염과 영아사망율이 높은 것도 특이한 점입니다. 미국 내부에서도 똑같은 비교를 할 수 있습니다. 미신적인 종교 성향과 반 진화론의 수준으로 대표되는 중서부와 남부 주에서는 위와 같은 사회의 건강도를 측정하는 수치들에 대한 문제들이 똑같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동북부의 세속주의적인 주들은 유럽의 그것과 비교할 때에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로 얽히는 것은 아닙니다. 신에 대한 믿음이 사회의 문제를 일으킬 수도, 사회의 문제가 신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질 수도, 또는 두 문제가 다른 어떠한 문제로부터 발생될 수도 있습니다. 인과관계에 대한 이슈는 배제하더라도, 무신론이 건강한 사회와 완전히 호환적이라는 것과, 종교적 믿음이 꼭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신론자 비율이 높은 나라들일수록 또한 개발도산국에 대한 지원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입니다. 기독교 문자주의와 실제 기독교적 가치의 관련성은 다른 자선사업 지표에 의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고경영자와 평균 직원간의 연봉차를 보십시오. 영국은 24대 1, 프랑스는 15대 1,  스웨덴은 13대 1, 83%의 사람들이 예수가 진짜로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믿는 미국에서는 475대 1입니다. 과연 이 거대한 낙타가 바늘구멍을 쉽게 통과한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폭력의 근원으로서의 종교


21세기 문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중에 하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윤리, 영적인 경험, 그리고 피할 수 없는 고난과 같은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들을 비논리적이지 않게 표현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과제에 있어서 종교적 믿음만큼 문제가 되는것은 없습니다. 비호환적인 종교적 신앙은 이 세상을 분리된 도덕제도를 가진 그룹으로 분열시켰습니다. 기독교인, 무슬림, 유태인, 힌두등으로 말입니다. 이러한 분리는 계속해서 분쟁의 원인으로 남아왔습니다. 종교는 오늘날 역사상 어느때보다도 큰 폭력의 원천입니다. 최근의 팔레스타인 (유태인과 무슬림), 발칸반도 (정교회 세르비아인과 카톨릭 크로아티아인, 정교회 세르비아인과 보스니아와 알바니아의 무슬림), 북아일렌드(청교도와 카톨릭), 카슈미르(무슬림과 힌두), 수단(무슬림과 기독교인), 나이지리아(무슬림과 기독교인),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리아(무슬림과 기독교인), 스리랑카(불교인과 힌두인), 인도네시아(무슬림과 티모르의 기독교인), 이라크와 이란(시야파와 수니파 무슬림), 그리고 카프카스 지역(정교회 러시아이인과 체첸 무슬림, 아제르바이잔 무슬림과 기독교 아르메니안) 과 같은 케이스들은 단지 소수에 불과합니다. 앞서 말한 지역들에서 종교는 근 10년 수백만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명백한 원인입니다.

이 무지가 통제하는 세상에서, 무신론자만이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종교적 신앙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폭력을 조장합니다. 종교는 최소한 다음의 두 분야에서 폭력을 고무합니다. (1) 사람들은 종종 창조주의 뜻에 행동한다고 믿고 그에 따라 다른 사람을 죽입니다. (사후에 영원한 행복을 약속받는다는 이 정신병적인 믿음에 따라서 말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행동은 수도 없이 많은 예가 있고 그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지하드 요원의 자살폭탄 테러입니다. (2) 더 많은 사람들은 단지 자신의 종교가 도덕적 가치관의 중심이라 믿기 때문에 종교적 분쟁을 일으킵니다. 인간 문화중 지속되어 일어나는 문제중에 하나는 아이들에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공포와 잘못된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입니다. 많은 세속적인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종교분쟁은, 결과적으로, 종교로 인해 일어난 것입니다. (아일렌드만 봐도 됩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중도주의 신자들은 인간 분쟁은 언제나 교육의 부족, 가난, 또는 정치적인 불만으로 인한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진보진영의 망상중에 하나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는것은, 9/11 테러범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9/11 테러범들은 정치적인 억압따위는 겪은 과거가 없는 중산층 대졸자들이었습니다. 반면에 그들은 동네 이슬람 사원에서 불신자들의 타락과 순교자들이 가게 될 천국의 기쁨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과도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얼마나 많은 건축가와 기계공학자들이 시속 700km로 벽을 들이받아야지 우리는 성전(聖戰)자들의 폭력이 교육, 가난 또는 정치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까요? 놀라웁게도 진실은 이렇습니다: 혼자서 핵폭탄을 만들 수 있을정도로 교육이 잘 된 사람도, 죽고나서 천국에서 72명의 처녀를 가질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신앙에 의해 분열된 사람의 정신은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하며, 그러한 분열은 지성이 종교적인 망상을 뒷받침하게 될 정도로 까지 자라납니다. 만약 우리가 종교의 폭력을 근절하고자 한다면, 종교의 거짓된 확신을 근절해야 합니다.


왜 종교는 인류 폭력의 강력한 원인일까요?


우 리의 종교는 근본적으로 상호호환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는 죽었다 살아났고, 슈퍼히어로처험 다시 이 땅에 내려오거나 그렇지 않을 두가지 경우밖에 없습니다. 코란은 불변하는 신의 뜻이거나 그렇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종교는 세상의 이치에 대해 구체적인 주장을 합니다. 이러한 상호 호환 되지 않는 다수의 주장은 지속되는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어떠한 다른 주장의 분야도 다른 사람과 자신의 불화를 크게 강조하거나, 영구적인 보상과 처벌의 차이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종교는 ‘너희들과 우리’ 라는 생각이 중요한 차원을 넘는 그러한 분야의 하나입니다. 만약 어떠한 사람이 신의 이름을 바르게 부르는 것으로 영원한 행복과 영원한 고통의 차이를 불러올 수 있다고 믿으면, 비신자와 배교자들을 험하게 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됩니다. 어떠한 경우에는 살인또한 정당화됩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어떠한 말을 함으로서 자신의 아이들의 영혼이 영원한 불행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면, 옆집에 사는 이교도는 소아성추행범보다 훨씬 위험한 사람이 됩니다. 종교적인 다툼은 단순한 부족주의, 인종차별 또는 정치색에 따른 충돌에 비해 헤아릴 수 없이 위험합니다.


종교적 신앙은 대화를 멈추게 합니다. 종교는 믿음에 대한 증거를 요구하는 것이 계획적으로 금지된 유일한 분야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믿음은 종종 사람들의 삶의 의미가 되고, 죽음의 의미가 되고, 그리고 너무나도 종종 살인의 이유가 됩니다.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큰 이해관계가 걸려 있을 때에 사람에게는 대화로 해결할 것인가, 폭력을 행사할 것인가의 단순한 선택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이성적이 되려는 의지,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새로운 증거와 이론에 의해 발전시키려는 의지만이 대화의 근절을 막을 수 있습니다. 증거가 없는 확신은 인간성을 빼앗고 불화를 조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성적인 사람들이 언제나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을테지만, 반면에 비이성적인 사람들은 그들의 교조에 의해 분열될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다른 종교간의 대화를 증가시킴으로 인해 세상의 분열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심히 가능성 없는 일로 보입니다. 문명세계의 해결책이 명백한 비이성에 대해 서로 포용하는 것일 리 없습니다. 진보적인 종교 토론을 주장하는 단체들은 서로의 세계관이 충돌하는 부분을 덮어두고 넘어가려교 하지만, 이 부분은 같은 종교의 신자들간의 충돌의 원인으로 남게 됩니다. 결국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역자: 대개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따라가는 사고 방식)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데에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노예제도나 식인풍습이 없어진것 처럼 종교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어지려면 우리가 신앙의 교조를 버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것들에 대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우리는 신앙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에 대한 이유가 없거나 또는 부적절한 근거만이 있다면, 우리는 세상과도, 사람들과도 단절됩니다. 무신론은 단지 가장 단순한 지적 솔직함(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나가는것) 에 대한 헌신입니다. 사람의 확신의 강도는 그가 가지고 있는 정당한 근거와 증거에 비례해야 합니다. 확실하지 않은데도 확실하다고 우기는 것, 어떠한 증거도 없으면서 확신하는 것은 지적, 그리고 도덕적인 결점입니다. 무신론자만이 이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무신론자는 단지 종교의 거짓말을 알아채고, 그 거짓말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절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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