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펌] 빗나간 종교 비판을 비판한다.

쓰름 2010.04.27 20:20 조회 수 : 37481

최근 인터넷에서는 소위 <개독>(저는 개독과 기독을 구분하여 사용하니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이라 불리는 무리를 까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당장 반 기독교 연합의 회원 수를 생각해보라. 또 이곳 이글루스에서는 어떠한가? 본인이 즐겨보는 웹툰에서도, 조금만 종교 얘기가 나오면 댓글로 치고박고 싸우고 난리가 난다. 실로 전 인터넷상에서 종교 떡밥이란 가장 강력한 떡밥 중 하나이다. 스리슬쩍 꼬리만 보여도 토론은 금새 격화되고, 잘못하면 커뮤니티 자체가 공중분해 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그리고 매번, 어떠한 방식으로 토론이 진행되든 간에 종교 관련 토론에서 개독들은 질겅질겅 씹히고 있다. 심지어는 같은 기독교인들 마저 "저도 기독교인이지만 개독들을 옹호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라면서 다만 드립을 치고 있다. 이건 비단 온라인 상에서만의 특징은 아니다. 단지 온라인의 특성상 표출하기가 쉬울 뿐이지, 결국 온라인 역시 현실의 일부 아니겠는가? 그만큼 개독에 대한 분노는 공공연하다 하겠다. 누구나 정치인을 화제로 술안주를 삼는 것처럼 개독 역시 그런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허나 나는 그러한 <개독 비판>을 보면 매번 하는 생각이 있다. 그건 결국 허공의 삽질일 뿐이다.
이를테면 아래의 영상을 보자.

*View subtitles에서 Korean을 누르시면 한국어 자막이 나옵니다.
=
TED Prize 케런 암스트롱이 소망을 말한다: '다른 사람을 나와 같이 여기는 마음을 위한 선언'

사람들은 종교적이고 싶어하며 우리는 종교가 조화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학자인 케런 암스트롱이 얘기한다. 그녀는 TED 사회에 '다른 이를 나와 같이 여기는 마음을 위한 선언'을 만들어 황금률이 다시 세계의 중심적 교리가 되도록 돕자고 얘기한다.
=
세계 최고의 지성들이 모였다는 TED에서 이런 강연을 했다니 놀랍다. 더구나 영상으로 보자면 저 강연에 감동 받아 눈물을 흘리는 청자도 있다. 심지어 케런 암스트롱은 TED Prize를 받았다. 이걸로 테드상을 받았다는 말인가? 믿기지 않는 일이다.

왜 믿기지 않는 일인지 설명해보겠다.

기본적으로 이런 식의 열린 사고를 가진(불교나 유교 등등 다른 종교에 대해 공부했다는 것 자체가 열려있다는 증거라고 본다), 또는 진보적 종교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건 종교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야. 종교의 진정성을 되찾아야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진정한 모습이 아닌 종교, 작게는 개독에서부터 크게는 911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러한 비판적 자세가 결코 반종교에 기초한 사고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기독교 비판과 니체의 기독교 비판은 절대 같은 선상에 놓일 수가 없다. 톨스토이나 케런 암스트롱의 종교 비판은 철저히 종교적 사고 방식에 의거한 자세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맹신에 기초한, 편협한 사고 방식이라는 소리이다. 결국 이들의 모든 비판은 하나의 결론으로 집중되고 있다.

진정한 종교를 되찾자. 황금률을 되살리자.

종교를 도덕의 유일한 근거인 양 여기는 것은 거의 모든 종교인의 특징이다. 그것은 종종 진보적 종교인이라 자처하는 위와 같은 사람들에게서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종교가 도덕의 유일한 근거라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위에서 예로 든 불교나 유교만 해도 저들이 말하는 유일신 종교와는 큰 차이가 있다. 특히 유교는 철학으로 분류되기까지 한다. 황금률이라는 것은 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이다.

그래, 물론 케런 암스트롱도 이런 말을 하기는 했다. "세상의 모든 전통적"인 사상 기타 등등에서 황금률이 발견되었다고. 이것이 얼핏 유일신 종교만이 아닌 다른 종교들, 혹은 다른 철학들을 인정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케런 암스트롱은 얼마 뒤 이런 말도 했다. "세속주의라는 것은 서유럽에서만 붙잡고 있는 낡은 사상"이라고.

세속주의라는 것이 무엇인가? 세속주의라는 것은 내세가 아닌 현재를 지향하는 휴머니즘적인 사상이다.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문화적 성취, 자기 실현의 가능성을 믿는 사상이다. 이것을 낡았다고 평가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세속주의는 이제 종교에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소리이다.
르네상스로부터 기원한 휴머니즘의 시대를 거꾸로 기어올라가 중세로 회귀하자는 낡은 사고 방식에 다름아니다.

케런 암스트롱의 주장은 틀리지 않다. 나는 지금 황금률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케런 암스트롱의 주장 저변에 깔린 사상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는 지금 맹신에 사로잡혔다. 눈물을 쓸어내는 청자들을 보며 이 영상을 생각하는 내가 유별난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 번 종교에 사로잡힌 사람이 종교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 사람의 지식이나 지능, 지혜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다른 모든 철학, 종교들에서 황금률이 발견되었다는 말은 그 모든 철학이나 종교들이 유일신 종교의 위대함을 증거한다는 말과 진배없다. 모든 게 그들의 시녀에 불과하다는 소리에 불과하다. 결국 모든 것은 유일신 종교가 말하는 "신 또는 신성"으로 귀결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그들이 비판하는 개독과 다를게 뭔가? 결국 그들도 스스로를 옳게 여기기 위해, 진리를 표방하며 <좋은> 해석을 내렸을 뿐이다. <잘못된> 해석의 반대말이 어떻게 <좋은> 해석이 될 수 있는가? 종교를 취사선택하는 과정에서 그네들은 나쁜 해석만을 선별했을 뿐이고, 저치들은 좋은 해석만을 선별했을 뿐이다. 선별의 근거란 자신들의 독단과 믿음이다. 그들의 <도덕>이다. 종교를 해석하고 선별하기 전부터 그들은 <좋은> 해석과 <나쁜> 해석을 구분할 줄 알았다.(<옳은> 해석과 <잘못된> 해석이란 존재할 수 없다. 경전은 신의 뜻이고 신의 뜻은 인간이 알 수 없으니까) 그러므로 그 선별은 종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설령 종교가 그 기원이라 할지라도, 종교는 이미 도덕의 근거나 기준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종교로 인해 좋아지든 나빠지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한 개인이 긍정적으로 됐건 부정적으로 됐건 신경쓰고 싶지 않다. 어차피 증거없이 긍정할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로 증거없이 부정할 수 있다. 종교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꼭 긍정적인 면을 가리키진 않는다. 진정한 종교라고? 웃기는 소리이다.

신은 죽었다. 종교는 낡았다. 우리는 오히려 인간 본연의 가치, 자유로운 사상을 찾을 필요가 있다. 휴머니즘, 세속주의, 무엇이라 이름 붙이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닌 그 안에 내재된 "황금률"이니까.

나에게도 소망이 있다.
언젠가 모든 사람들이 "인간은 종교가 없이도 충분히 영적이고 도덕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 오기를 빈다. 황금률이 온세계에 퍼지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리고 그곳에 종교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 나는 존 레논의 노래처럼 "종교 없는 세상"을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한 첫 걸음은 엇나간 종교 비판, 즉 개독들을 까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무신론자이며, 반종교를 표방하는 나에게는 그렇다.
개독을 공격하는 것은 결코 종교 그 자체를 뿌리 뽑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종교를 <좋은> 방향으로 수정시켜 그것의 수명을 연장시킨다.(이 글을 보자) 우리는 더욱 깊은 곳을 공격할 필요가 있다. 개독 비판, 종교 비판, 자아 비판은 종교인들 스스로가 하게 내버려두자. 그건 그들의 일이다. 반종교인들이-비종교인이라면 몰라도-할 일은 따로 있다.

우리의 적은 <개독>이 아니다. 종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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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글 - http://painfulness.egloos.com/3677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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