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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heism.kr

목사 : 김기현
미워잉 : 분석가
몰라잉 : 지발돈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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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들에게 고함, 특히 미워잉님에게



미워잉님에게


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답변이 좀 늦었습니다. 주일이 다가오면 무척 바쁘답니다.


그리고 여기서 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신중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늦었지요. 이해하지요?


1. 이 카페가 기독교만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 적어도 미워잉님만은 모든 조직 종교에 반대한다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안티기독교 사이트에 와서 왜 기독교만 문제삼느냐고 하는 것이 애초부터 잘못된 항변입니다. 안티불교 사이트에 가서 왜 불교만 문제삼느냐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그러나 덧붙인다면, 왜 기독교만 문제삼느냐고 했을 때의 의도는 여러분들이 비판하는 기독교의 여러 가지 행태 중에 많은 것은 기독교만의 것이 아니라 종교 일반의 것인데, 기독교를 그런 식으로 비판하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도 그러한 혐의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2. 하여간에 미워잉님이 주장하는 바는 자기 주장에 대한 철저한 확신을 기초로 세워진 모든 종교에 대한 비판, 다시 말해서 님이 표현한 바를 인용해서 말한다면, ‘투철하고 타협 없는 믿음이야 말로 악덕아지 인류에게 가장 유해한 것들 중의 하나’라는 것이군요.


이에 대해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지요. 님의 주장은 제가 보기에 칼 포퍼(Karl Popper)의 주장 같아 보입니다. 칼 포퍼가 겪은 2차 세계대전은 그로 하여금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주장과 신념에 그 어떠한 오류나 문제도 없다고 말하는 사상들, 철학사적으로는 플라톤과 헤겔,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이지요. 종교적으로는 기독교가 당연히 포함되지요. 이런 사유체계는 자신을 선으로, 타자를 악으로 상정하고 절대적이고 무한 싸움을 벌이게 되지요. 오직 제로섬 게임만이 존재합니다.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정글의 법칙이 인간 사회에 난무하게 되지요. 그 결과가 바로 2차대전이라는 것이지요.


미워잉님이 말한 바대로 신앙의 이름으로 새벽에 잠도 안 자고 싸돌아다니면서 단군상을 톱질하는 목사들, 강의석군을 제적시키는 대광고의 모습에서 그 위험한 전체주의의 모습을 선연히 볼 수 있습니다. 위험한 배타성이요, 근거 없는 확신이 만들어내는 비극이지요. 안타깝게도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칼 포퍼는 자신의 과학철학을 사회철학에도 적용합니다. 그의 과학관을 가장 잘 대변해 줄만한 용어가 바로 반증원리(falsification)입니다. 이 원리를 사회와 인간에게 확장하지요. 포퍼의 생각으로는 과학은 절대적으로 참인 지식이 아니라, 아직까지 틀리지 않은, 다시 말해서 언제든지 틀릴 가능성을 갖고 있는 학문입니다. 이 지식의 순도를 굳이 비유하여 퍼센트로 본다면, 실증주의와 같이 100%의 진리가 아니라, 뭐랄까 한 90%정도 된다고 할까요. 아니면 얼마간 그 이상일 수도 있구요, 그 이하일 수도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이라 할 수 있는 과학마저도 절대적 지식을 포기한 마당에 철학과 종교야 오죽하겠습니까, 포퍼의 눈에 말입니다.


포퍼의 이런 주장은 기독교 신학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지요. 저는 포퍼의 주장에 상당한 일리가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목사님으로 기억하는데, [기독교 죄악사]에서 보여지듯이 교회 역사에서 벌어진 신앙의 이름으로 벌어진 온갖 폭력들이 자기 확신에 찬 주장의 자연스러운 귀결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왜곡이요 오해의 발로라고 발명을 해도 역사는 뜯어 고칠 수는 없을테니, 그의 주장에 수긍할 수밖에요.


게다가 신학적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이 절대적이지, 그 말씀에 대한 인간의 해석은 인간학적으로도 인식론적으로도 상대적이고 유한할 수밖에 없는데도 그 한계를 넘어서 자신을 절대화하려는 기독교 내의 위험천만한 바벨탑 쌓기는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창세기로부터 출애굽기의 십계명, 그리고 예수의 성전정화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요한의 묵시록에까지 성경은 철저히 인간의 자기 우상화와 교만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포퍼의 주장은 기독교식으로 받아들이면 - 아전인수격일런지는 모르겠지만요, - 신의 절대성과 인간의 유한성을 혼동하는 오류에 대한 일침이지요.


하지만, 님이 말씀하신 대로 투철하고 타협 없는 믿음이 악덕이자 인류에게 가장 유해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두 가지로 말씀드리지요. 하나는 잘 아시겠지만, 역사는 그런 고집스러운 사람들의 눈물어린 분투로 발전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아도, 그 어떤 역사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단, 기독교의 타협 없는 믿음은 결코 인류 역사에 유익을 끼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분들에게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적어도 초기 한국 교회가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력만은 인정해 주겠지요. 그 자랑이 오늘날에 있어서 수치와 부끄러움이 되었지만요.


다른 하나는 포퍼의 논리에 대한 토머스 쿤의 반박입니다. 간단히 말해 자연과학도 포퍼 자신이 말한 대로 반증원리를 지키지 못한다는 겁니다. 과학자 집단도 기존의 이론에 반하는 또는 모순이 되는 과학적 사실을 관찰하고도 수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기존 이론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러서야 새로운 이론을 수용하지요. 쿤에 의하면, 이러한 과학 행위는 종교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새 이론의 수용을 개종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정도이지요.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잠깐 검토해본 [무신론서설]에도 그렇고, 님의 글에도 그렇고 경험적인 자연 과학은 객관적이라는 인식을 잔뜩 담겨져 있어서 그렇습니다. 쿤을 넘어서 폴 파이어아벤트는 과학도 주술과 같다고 할 정도이지요. 비유컨대, 주술의 확률이 과학의 확률에 미치지 못했서 그렇지 다를 바 없다는 겁니다. 물론, 파이어아벤트의 이런 극단적인 주장에 동조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래도 과학이 나름대로 다른 여타의 학문에 비해 월등한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것을 저는 부정하지 않습니다. 과학의 합리성을 미신이라고 저는 보지 않지요.


그래도 이 논의가 말하는 바는 과학도 종교 활동가 전혀 다를 바 없다는 겁니다. 다시 한번 토를 단다면, 과학이 종교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종교가 과학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과학을 찬찬히 살펴보면, 종교적 행위를 많이 닮았다는 거지요.


제가 앞서 쓴 글에 말했듯이, 님이 비판하는 기독교의 행태는 단지 기독교라는 종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도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더 확장하지요. 가장 순수하고 객관적이라고 하는 과학도 종교적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제 이야기가 엉뚱한 곳을 많이 빠져 나갔군요.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투철하고 타협 없는 믿음은 과학도 예외가 아니며, 그런 믿음이 악덕이기도 했지만, 미덕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물론, 기독교에는 미덕보다는 악덕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양보하도록 하지요. 아마 님보다도 제가 기독교의 죄악사를 더 잘 알 것 같기에 그렇습니다. 무례한 말일는지 모르지만, 제가 님보다도 기독교의 이상과 원칙을 더 잘 알기에, 그 지점으로부터 너무 많이 벗어나버린 현재의 한국 기독교와 제 모습을 보자면 미덕 보다는 악덕이 더 많지요. 하여간에, 기독교의 자기 확신이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니며, 도리어 칭찬받아 마땅한 덕목입니다.


3. 불교에 관해서


미워잉님.


님은 모든 종교가 철저한 자기 확신 속에 서 있다는 것을 양보해서 인정하더라도, 예컨대 기독교를 불교와 비교해 보면, 기독교가 얼마나 위험한 신념에 사로잡혀 있는가를 지적했습니다. 먼저 인정하지요. 우리 한국 사회에서 보여지는 기독교, 특히 개신교의 시끄럽고 독선적인 모습에 비하면, 불교는 정말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제 개인적인 얘기를 하지요. 저는 처음 예수님을 영접한 다음에, 목탁 소리나 염불 소리를 상당히 역겨워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 소리 속에 형용할 수 없는 신비한 소리를 느낍니다. 우리 개신교가 닿지 못하는 내면의 세계를 어렴풋이나마 보게 됩니다. 그리고 부러워하지요.


하지만 불교의 이런 외양적인 모습과 달리 종교의 본질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제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불교의 역사에 대해서 잘 아는 게 없어서 님이 요구하신 대로 불교가 다른 종파를 박해한다거나 교리가 다르다고 사람을 죽이거나 하는 일은 단 한번도 없었다는 님의 주장을 반박할 만한 자료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말씀드리자면, 불교 또한 그런 일이 많았다고 확신합니다. 두 가지를 예로 들지요. 하나는 저의 선생님 얘기를 하겠습니다. 외람되게 자랑한다면, 저의 선생님은 하버드 대학에서 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지요. 종교학과 신학을 두루 공부한 분입니다. 그분이 쓰신 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대략 인용하자면 이렇습니다. 불교 내의 사문 논쟁이나 역사를 안다면, 불교를 포용적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분은 그 논문에서 그 역사적 실례를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추측해 보면, 불교에도 자기 종교의 확신을 위해서 기독교보다 더할는지, 덜할는지는 몰라도 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음으로 지금의 인도에서 벌어지는 종교 전쟁과 갈등을 보십시오. 그곳에서 기독교와 특히 서양이 뿌려놓은 식민지 잔재라는 점에서 제가 그 점을 말한다는 것이 상당히 망설여집니다. 그럼에도 힌두교, 시크교, 불교 간에 벌어지는 테러와 살인은 적어도 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유목민적 전통을 지닌 일신교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와 달리 동양의 전통 종교는 포용적라는 주장을 무색케 합니다.


아마, 님은 이 대목에서 그러니까 모든 종교 조직을 반대한다는 예의 주장을 하겠지요. 그런 당신의 주장을 꺽고 싶지는 않습니다.


4. 다음으로 ‘무신론은 종교인가?’에 관해서 말씀드리지요.


몰라잉님이 올려 놓으신 “무신론 서설”을 잘 읽어보았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로 미루지요. 찬찬히 읽어보고 공부하고 있거던요.


저는 회의론과 무신론을 구별해서 이해했는데, 강한 무신론과 약한 무신론으로 구분하고 약한 무신론을 회의론으로 설명해 놓은 듯 합니다.


하여간에 무신론도 종교라는 제 주장과 그 근거로서 칼 마르크스의 주장의 근거도 다음 기회에 설명하도록 하지요.


5. 마지막으로 감사의 말을 하고 싶네요.


님과 클레어필드(?)님의 덕분에 공부 많이 하고 있습니다.


서로 예의를 갖추되, 격렬한 논쟁을 기대합니다.


그럼 우리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


김기현 드림.



추신: 제 카페에도 한 오세요.


http://cafe.daum.net/paroikoi 
 



답글 


 
두통이: 무신론자에게 '우리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라고 댁 맘대로 전하는 건 횡포입니다. 누가 주님의 평화를 받고 싶댔어요? 물어 보지도 않고 주는 건 정말 불쾌하다고요. 왜 이러냐고요..앞으론 물어 보고 나서 원하는 사람에게만 주님 평화를 전하든지 말든지 하시면 좋겠어요. 04.07.27. 18:08 답글  

쥐뿔개뿔: 자안이 말하던 김기현 목사인가배? 04.07.27. 18:46 답글  

몰라잉~♡: 과학에 대한 오해가 심하시군요. 과학은 믿음이 아니라 확인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은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왜 상대성이론이 노벨상을 못 받았을까요? 상대성이론을 반박하지 못했지만 확인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확인되었을 때는 이미 아인슈타인이 고인이 된 뒤였죠. 04.07.27. 18:50 답글 | 수정 | 삭제  

몰라잉~♡: 무신론서설 말고 믿음에 대한 글도 읽어보셨는지요? 확증된 것에 대한 믿음이 종교와 닮았을까요? 종교는 분명 증거없는 것에 대한 믿음, 즉 신앙을 기초로 합니다. 과학은 기대라는 것을 하긴 하지만 신앙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습니다. 과학이 만약 신앙에 기초하게 된다면 그건 협잡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04.07.27. 18:54 답글 | 수정 | 삭제  

몰라잉~♡: 토마스 쿤의 과학에 대한 생각은 많은 부분 일치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 원인을 잘못 보았죠. 과학이 점진적 발전이 아닌 혁명적 패러다임 쉬프트에 의한 것 뿐이라는 생각을 기조로 하고 글을 썼을 뿐 입증하지는 못했습니다. 04.07.27. 18:56 답글 | 수정 | 삭제  

몰라잉~♡: 상대성이론은 얼핏 보면 뉴턴역학에 대한 혁명적 고찰의 결과로 보이지만, 다시 보시면 뉴턴역학이 상대성이론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뉴턴역학에 의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생각을 시도한 것보다는 뉴턴역학의 맹점을 탐구하던 중 하나의 가설을 적용해 본 것이 성공한 것이죠. 04.07.27. 18:59 답글 | 수정 | 삭제  

몰라잉~♡: 과학을 종교처럼 대하고 과학을 종교처럼 만드는 자들은 과학자가 아니라 그 과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입니다. 또한 일반인들의 미숙한 접근방법을 가지고 과학의 특성인 것처럼 단정짓는 것은 지난 역사기간 동안 호교론자들이 행하여 왔던 것으로서 범죄에 가까운 오해입니다. 04.07.27. 19:02 답글 | 수정 | 삭제  

강산: 물귀신전문가넹...과학과 종교는 다르지만 과학이 종교적 행위를 닮았다...쿤의 이론이 이의를 받지않는 정설이었나? 그건 둘째치고 패러다임의 변화는 주로 물리학에 적용하는게 아닌가? 그렇다면 생물학은 어떤가? 04.07.27. 19:08 답글  

강산: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정한다면 자기가 평생배웠던것을 다르게 생각해야 하기 때문일건데 기본적인 가정자체가 다르기 때문일것이다.가정 자체는 더이상 소급할수없고 관측으로 증명해야 할텐데 그 관측자체는 모두가 수긍할수 있는것 아닌가? 종교도 그런가? 기독교의 가정, 예를들어 신은 전지전능하다...라는게 있으면 04.07.27. 19:12 답글  

강산: 그 가정에 대해 모두가 수긍할만한 관측이나 기타 객관적이라할게 있나? 04.07.27. 19:13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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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목사님께



이에 대해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지요. 님의 주장은 제가 보기에 칼 포퍼(Karl Popper)의 주장 같아 보입니다. 칼 포퍼가 겪은 2차 세계대전은 그로 하여금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주장과 신념에 그 어떠한 오류나 문제도 없다고 말하는 사상들, 철학사적으로는 플라톤과 헤겔,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이지요. 종교적으로는 기독교가 당연히 포함되지요. 이런 사유체계는 자신을 선으로, 타자를 악으로 상정하고 절대적이고 무한 싸움을 벌이게 되지요. 오직 제로섬 게임만이 존재합니다.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정글의 법칙이 인간 사회에 난무하게 되지요. 그 결과가 바로 2차대전이라는 것이지요.

==> 칼 포퍼만의 말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것들입니다. 독단주의와 맹신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반대하는 주장은 버트란드 러셀을 비롯한 여러 자유사상가들이 강조해 왔습니다. 지금은 회의주의자들이 그러한 주장들을 이어가고 있죠.

플라톤이나 헤겔은 독단론이나 맹신주의를 주장한 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철학이나 사상사적으로 볼 때, 독단론을 주장한 사람은 아퀴나스, 더 심한 경우로는 칼뱅 같은 사람이 적합하겠죠. 마르크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독단주의자로 볼 수 없죠. 그의 추종자들이 마르크스주의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공산주의가 유사종교로 분류되기까지 했지만, 자본론의 어디에 자기 주장이 무조건 옳다고 되어 있나요?



그래서 칼 포퍼는 자신의 과학철학을 사회철학에도 적용합니다. 그의 과학관을 가장 잘 대변해 줄만한 용어가 바로 반증원리(falsification)입니다. 이 원리를 사회와 인간에게 확장하지요. 포퍼의 생각으로는 과학은 절대적으로 참인 지식이 아니라, 아직까지 틀리지 않은, 다시 말해서 언제든지 틀릴 가능성을 갖고 있는 학문입니다. 이 지식의 순도를 굳이 비유하여 퍼센트로 본다면, 실증주의와 같이 100%의 진리가 아니라, 뭐랄까 한 90%정도 된다고 할까요. 아니면 얼마간 그 이상일 수도 있구요, 그 이하일 수도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이라 할 수 있는 과학마저도 절대적 지식을 포기한 마당에 철학과 종교야 오죽하겠습니까, 포퍼의 눈에 말입니다.

==> falsification은 그냥 '반증'이고 칼 포퍼가 말한 것은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입니다. falsifiability는 오늘날 과학적인 명제와 비과학적인 명제를 구분하는 가장 대표적인 잣대의 역할을 합니다. '과학'이란 말이 요즘 아무데서나 쓰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모호해진 경향이 없지 않지만, 엄밀히 말하면 과학은 어떤 특정한 종류의 지식을 의미할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지식을 얻기 위한 방법론입니다. 그리고 과학이란 방법론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관찰과 귀납입니다. 관찰과 귀납으로 절대적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요? 애초에 과학은 절대적인 지식을 추구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목적을 포기할 일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신학적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이 절대적이지, 그 말씀에 대한 인간의 해석은 인간학적으로도 인식론적으로도 상대적이고 유한할 수밖에 없는데도 그 한계를 넘어서 자신을 절대화하려는 기독교 내의 위험천만한 바벨탑 쌓기는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창세기로부터 출애굽기의 십계명, 그리고 예수의 성전정화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요한의 묵시록에까지 성경은 철저히 인간의 자기 우상화와 교만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포퍼의 주장은 기독교식으로 받아들이면 - 아전인수격일런지는 모르겠지만요, - 신의 절대성과 인간의 유한성을 혼동하는 오류에 대한 일침이지요.

==> 아주 진부한 주장이군요. 결국 예수는 잘했고 무조건 인간이 잘못한 것이란 이야기죠. 저는 앞서의 글에서도 말했듯이 그런 식의 주장은 원죄론 등의 인간 비하적인 관념에서 온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그런 목사님의 신본주의적 주장이야 말로 더 위험하며 자기모순에 빠진 말씀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종교분쟁의 대표적인 원인 중의 하나는 신에 대한 겸손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신학적 견해가 다른 두 집단이 서로를 신성모독했다고 비난하게 되는 것이죠. 삼위일체라는 교리가 채택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아십니까?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이고 신성을 모독했다는 누명을 쓰고 오랜 세월동안 기독교인들에게 박해를 당해왔습니다.

지금도 한국의 기독교는 자기네 입맛에 맞지 않는 신앙을 가진 교단을 이단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단 판정을 하는 교단이나 이단 판정을 받는 교단이나 한결같이 신에 대한 끝없는 경배를 말하면서도 상대방의 오만불손함을 신성모독이라고 비난합니다.

상대방을 가리켜 교만하다고 꾸짖고 신 앞에 겸손하라고 주문하는 레퍼토리는 아주 진부한 만큼이나 모호한 말이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쓰일 수가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삼위일체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매우 귀중한 교리고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오랜 기간동안 신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간주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도 인간이라고 보기 때문에, 인간을 신격화하는 것을 신에 대한 가장 중대한 죄악이라고 보는 그들로서는 삼위일체의 교리가 신성모독적이라 여길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신앞에서 겸손하라는 말의 의미는 자신이 가진 교리 또는 신학적 주장에 권위를 부여하려는 시도 이상의 것이 못 됩니다.

목사님의 주장부터 살펴볼까요?

"창세기로부터 출애굽기의 십계명, 그리고 예수의 성전정화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요한의 묵시록에까지 성경은 철저히 인간의 자기 우상화와 교만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목사님부터 바이블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을 단정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지금 목사님의 바이블 해석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바이블은 철저히 교만의 위험성을 경고했다고 단정내리는 것은 목사님께서 그렇게 경계하시는 "오만"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런면에서 저는 목사님의 주장을 자기모순적이라고 말씀드렸던 겁니다.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요한 묵시록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해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요한 묵시록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합니다. 목사님께서 함부로 단정내리실 사항이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신을 향한 겸손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 겸손입니다. "신 앞에서 겸손하라"는 말은 신이 공개석상에서 직접 해명하지 않는 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일단 신이 존재하는지조차 불분명한데다 존재한다 쳐도 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신학에 따라 겸손의 방식이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에게 겸손하라"는 말은 구체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내 것과 다르더라고 그것을 존중하고 남을 함부로 무시하지 않는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신을 향한 겸손을 주장했던 자들이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박해하고 학살한 예는 많습니다. 피렌체의 해부학자들이 불경스럽게도 남녀의 갈빗대 수는 같다고 주장했을 때, 성난 기독교인들은 그들을 불태웠습니다. 그 신실했던 기독교인들은 신 앞에서는 겸손했지만 타인에 대해서는 그렇지가 못했고 그때문에 불행한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님이 말씀하신 대로 투철하고 타협 없는 믿음이 악덕이자 인류에게 가장 유해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두 가지로 말씀드리지요. 하나는 잘 아시겠지만, 역사는 그런 고집스러운 사람들의 눈물어린 분투로 발전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아도, 그 어떤 역사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단, 기독교의 타협 없는 믿음은 결코 인류 역사에 유익을 끼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분들에게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적어도 초기 한국 교회가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력만은 인정해 주겠지요. 그 자랑이 오늘날에 있어서 수치와 부끄러움이 되었지만요.

==> 제가 유해하다고 말씀드린 것은 맹신주의입니다. 제가 반대하는 것은 근거 없이 투철한 믿음입니다. 뭐든지 철썩같이 믿는 것이 본받을 만한 미덕이라 여기는 관념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많이 부족하긴 합니다만 "이유 있는 고집"을 유해한 악덕이라 주장할 만큼 바보는 아닙니다. 그리고 초기의 한국 교회의 영향력만큼은 컸다고 말할수도 있겠습니다만, 유익했다고 보는 것은 좀 논란의 여지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하나는 포퍼의 논리에 대한 토머스 쿤의 반박입니다. 간단히 말해 자연과학도 포퍼 자신이 말한 대로 반증원리를 지키지 못한다는 겁니다. 과학자 집단도 기존의 이론에 반하는 또는 모순이 되는 과학적 사실을 관찰하고도 수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기존 이론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러서야 새로운 이론을 수용하지요. 쿤에 의하면, 이러한 과학 행위는 종교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새 이론의 수용을 개종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정도이지요.

==> 쿤이 포퍼를 반박한 것은 주로 반증가능성의 원리를 공격한 것입니다만 그렇다고 부정한 것도 아닙니다. 반증가능원리를 적용할 수 없는 예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쿤이 과학을 가리켜 종교니 개종을 운운했다는 것은 저로서는 금시초문입니다. 과학이 아니라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고 증거는 없이 믿는 과학자를 가리켜 그렇게 말할 수는 있겠죠. 그리고 기존 이론과 어긋난 관찰이 나타났다고 해서 기존 이론이 간단히 폐기되는게 오히려 더 큰 문제 아닌가요? paradigm을 영어사전에서 찾아 보십시오. 그 단어의 의미는 원래 세계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범적인 예(example)"를 뜻하는 겁니다. 기존이론을 정상과학이라고 할 때, 그것이 설명할 수 있는 사례들의 집합이 바로 패러다임인 것입니다.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은 기존 이론에 반하는 사례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을때가 아니라, 기존 이론이 설명할 수 있는 사례들은 물론 발견된 예외적인 사례들까지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나타났을 때입니다.




투철하고 타협 없는 믿음은 과학도 예외가 아니며, 그런 믿음이 악덕이기도 했지만, 미덕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 과학자들은 자신의 이론을 맹신하지 않습니다. 입증하기 위해 증거를 찾을 뿐입니다. 과학 지식도 믿음 맞습니다. 다만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제가 과학 지식을 신뢰하는 겁니다. 물론 나중에 그 지식이 잘못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나온다면 기존의 의견을 바꿀 용의는 있습니다만 과학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과학은 원래 오류수정기제를 통해 발전하게 되어 있거든요.

제가 기독교를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지 믿음이라서가 아니라 그 믿음이 아무런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믿을 거리가 못되는데도 무조건적으로 믿고 의심하지 말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신학을 부정하고 새로운 신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신학을 고수하려는 세력에 맞서기 위해 추종자들을 모을 생각을 하겠지만, 기존의 이론에 반하는 새로운 이론을 주장하려는 사람은 단지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하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말씀드리자면, 불교 또한 그런 일이 많았다고 확신합니다. 두 가지를 예로 들지요. 하나는 저의 선생님 얘기를 하겠습니다. 외람되게 자랑한다면, 저의 선생님은 하버드 대학에서 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지요. 종교학과 신학을 두루 공부한 분입니다. 그분이 쓰신 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대략 인용하자면 이렇습니다. 불교 내의 사문 논쟁이나 역사를 안다면, 불교를 포용적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분은 그 논문에서 그 역사적 실례를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추측해 보면, 불교에도 자기 종교의 확신을 위해서 기독교보다 더할는지, 덜할는지는 몰라도 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 저로서는, 단지 하버드 대학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은 분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것은 잘못이라고 봅니다. 물론 목사님께서 그러시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먼저 올린 글에는 불교도 배타적인 면이 있다고 말씀드렸을 겁니다. 다만 불교에 나타나는 배타성은 기독교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죠. 이것은 이미 드렸던 말씀이므로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불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포용적인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다른 종교를 진심으로 인정하는 몇 안되는 종교 중의 하나로서 심지어는 온갖 미신도 다 포용하는 문제를 안고 있기도 합니다. 이는 기독교의 교회가 다른 종교나 미신, 이단을 대하는 태도와 정반대라고 할 수 있죠.



다음으로 지금의 인도에서 벌어지는 종교 전쟁과 갈등을 보십시오. 그곳에서 기독교와 특히 서양이 뿌려놓은 식민지 잔재라는 점에서 제가 그 점을 말한다는 것이 상당히 망설여집니다. 그럼에도 힌두교, 시크교, 불교 간에 벌어지는 테러와 살인은 적어도 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유목민적 전통을 지닌 일신교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와 달리 동양의 전통 종교는 포용적라는 주장을 무색케 합니다.

==> 인도는 최근에 카슈미르의 분쟁 이외엔 이렇다 할 것이 없다고 알고 있는데요? 게다가 거기에 관련된 종교는 힌두교와 이슬람이지 불교는 아닙니다. 백번 양보해서 불교인의 잔인한 테러가 실제로 있었다고 해도 근 1500년간 기독교인이 저지른,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살육에 비하면 새발의 피겠죠.



아마, 님은 이 대목에서 그러니까 모든 종교 조직을 반대한다는 예의 주장을 하겠지요. 그런 당신의 주장을 꺽고 싶지는 않습니다.

==> 사실, 불교의 경우는 굳이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냥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런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나 이슬람교, 힌두교의 경우는 없어지는 것이 인류에게 훨씬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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