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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독교 - Part1

2015.04.30 22:35

atface 조회 수:818

https://namu.wiki/w/%EB%B0%98%EA%B8%B0%EB%8F%85%EA%B5%90


1. 개요[편집]

反基督敎. 기독교에 대해 반대 혹은 적대하는 태도. 기독교 안티[1]. 분류만으로 보자면 반종교의 한 종류이나, 그 활동 양상이나 배경 논리, 동기의 측면에서는 사뭇 다르다.

넓게 보면 반기독교는 기독교에 반대/적대하는 경우를 모두 포함하므로,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 혹은 이신론자나 범신론자 중에도 반기독교인이 존재할 수 있다. 심지어 다른 종교인, 예를 들어 유대교인이나 이슬람 신도들도 반기독교인일 수 있다는 것. 무신론자이면서 기독교를 사회악으로 보는 경우나 유대인인데 기독교를 이단/사이비로 적대하는 경우 등등. 쉽게 말해 반기독교라는 것은 무신론이나 불가지론 혹은 특정 종교 같은 것들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분류이기 때문에 다른 것들과 겹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기독교 내부에서도 기독교의 부패한 점을 보고 반기독교적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다.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사회적으로 크게 드러난 경우는 기독교 문화권이 타 문화권과 충돌할 때라고 볼 수 있겠지만,[2] 이를 근대 이후의 반 기독교 운동과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은 어폐가 있다. 반 기독교 운동의 기원은 근대 이후 범신론, 무신론 등 유일신 사상에 대한 비판이 본격화되던 시기로 잡아야 할 것이다. 스피노자, 프리드리히 니체[3] 등이 이러한 사상의 선구자로 꼽히며, 칼 마르크스의 사상이 확대되면서 서양에서도 국가 단위 반 기독교 운동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기독교가 중세 시대 동안 유럽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자랑했고 이는 근현대의 사상과 철학에도 여러모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유럽과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대이니만큼 이들이 가장 많이 믿는 종교인 기독교의 영향력 또한 엄청나다. 그 때문에 기독교에 대항하는 반기독교 또한 반종교 사상 중에서 가장 커다란 규모를 자랑한다. 아예 반종교=반기독교라고 인식을 가지는 경우도 많을 정도. 국내 반종교 운동도 반기독교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2. 기독교 비판의 초점[편집]

기본적으로 기독교 비판에 있어서 세 가지 포인트를 잡고 있다.

1. 기독교 신도의 문제 2. 기독교 교회 시스템의 문제 3. 기독교 교리 자체의 문제

다음 중 1번은 사실 기독교를 개인적으로 싫어할 이유로는 충분하나, 기독교의 존재 자체를 사회악으로 볼 근거로는 약하다. 하지만 2번 문제는 3번과도 밀접하게 관련된 문제인데다 종교가 종교일 수 있게 하는 본질적인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 역시 기독교의 존재 자체를 비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시 기독교 자체를 비판하기 위한 핵심 문제는 3번이라고 할 수 있다. 반기독교가 가장 문제삼는 것은 엄연히 3번이다. 1, 2번을 문제 삼을 때도 근본적인 바탕은 3번에 있다는 식이다. .


2.1. 기독교 신도의 문제[편집]

개개 신도의 비행, 혹은 목사나 장로를 비롯한 교회 지도층의 비행에 촛점을 둔다. 반기독교측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기독교의 근본교리 상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비판하고, 반면에 기독교측에서는 대체로 '잘못 믿는 사람이 잘못'이라고 반론하는 편이다. 다만 저런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대부분 수만에서 수십만의 신도들을 거느리는 대형교회의 수뇌부들이고, 그 신도들을 합치면 국내 기독교인의 상당수를 차지한다는게 문제.[4]


2.2. 기독교 교회 시스템의 문제[편집]

이것은 1에서 언급된 신도들의 문제가 사실은 기독교 신도 개인의 문제 만이 아니라, 기독교의 교회 시스템이 비행이나 비리를 조장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목사가 강력한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교회라는 시스템이 이러한 비리와 부도덕이 일어나는 토양이 된다는 주장으로, 교회라는 것이 하나의 '사회생활'이자 신도수를 유치하는 '서비스업' 같은 상황이 되면서 돈과 권력, 비리가 몰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교회를 불신하는 사람들은 '탈 교회주의'로 흐르기도 한다. 다만 이러한 사람들은 주류 기독교에서는 배척당한다.

개신교 내부에서 개신교 교회 체계에 회의를 느낀 사람들이 가톨릭 등 다른 종파로 이동하기도 한다.


2.3. 기독교 교리 혹은 야훼 그 자체의 문제[편집]

이것은 '기독교의 교리'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잘못된 교회 시스템이 태어나고, 개개 신도나 교회 지도층의 비리에 근거가 된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위에 언급된 여러 사건사고들이 벌어지는 이유가, 종교의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문제들에 대해 합리적인 증명없이 믿으라고 말하는 교조주의적 태도로 인해 개인의 사리사욕이나 집단의 광기에 쉽게 이용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개신교뿐만 아니라 가톨릭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5]

교리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신인 야훼(여호와)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성경에 묘사된 야훼의 행위 중에서 유아살해, 대량학살(전염병을 이용한 것 포함)/인종청소, 권위주의 등이 주요 비판 대상이 된다.


3. 국내의 반기독교[편집]

국내 반 기독교 사상은 조선 시대 기독교 비판, 공산주의의 종교 비판 등에서도 기원을 찾아볼 수 있으나 현대 반 기독교 운동과는 관련이 적은 편이다.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 북한에서는 종교인 자체가 사실상 전멸하였다.[6]하지만 주체사상교는 전국민이 믿는듯 하다

국내의 무신론 활동들도 반기독교적 성향이 강하다. 역시 2000년대 후반 들어 시작된 한국의 본격적인 무신론 운동이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이라기보다는 리처드 도킨스 같은 서구학자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인데, 도킨스로 대표되는 무신론자들은 일명 '신무신론(新無神論)'이라 불리며 <종교는 쉽게 용인되어서는 안 되며, 종교가 그 영향을 끼치는 곳에서는 반드시 반박되고, 비판되고, 합리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요지의 주장을 내세운다. 그리고 문화적, 역사적 배경에 의해 그들이 주로 타겟으로 삼는 종교는 당연히 기독교다. 즉, 기독교 자체도 외국에서 들어왔지만, 그에 대한 반론들도 외국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국내의 무신론 활동은 태생적으로 기독교를 주 대상으로 하며 무신론 그 자체보다 반기독교 성향이 강하다.

그 때문에 국내의 초기 무신론 활동들이 반기독교 운동에서 받은 영향들도 상당하다. 반기독교 운동에서 활용해온 자료들이나 논거들도 대부분 외국에서 받아들여온 것인데 무신론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반기독교 운동 측에서 쌓아놓은 자료들을 많이 가져다가 활용하기 좋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무신론 활동 초기에는 서로 주고받은 영향이 상당히 크다.[7]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서로 다투기도 하는 등, 분열이 일어나는 상황이다. 이는 딱히 우열의 문제나 한쪽의 병크라기 보다는 밑에서 언급할 '분열' 항목처럼 의견의 차이 때문이다.[8]


3.1. 구성[편집]

어쨌든 기독교만 싫어하면 되는 반기독교 특성상 반기독교의 자격으로 특별한 제한은 없다. 단지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인본주의자(人本主義者)'가 개념찬 반기독으로 인정받는다, 라고는 하지만...[9]

기독교의 타 종교 비방, 박해로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는 불교나 유교, 그리고 증산도 같은 민족 종교 계열의 "종교 갈등"이 한 진영에 결합되어 있다. 따지고 보면 범(凡) 반(反)기독교이기 때문에 구성의 스펙트럼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또한 비록 조직화된 움직임은 아니지만, 기독교의 대중문화 박해에 피해를 입는 서브컬쳐 계통에서도 이런 정서가 강하다. 예를 들어 판타지 작품에 마법이라는 말만 들어가도 기겁을 하면서 호들갑을 떨고 방영을 금지해야 한다느니 하는 주장을 펼치는 등. 과거 이쪽의 공적이나 다름없었던 YWCA는 기독교 계열 단체이다.

일부 채식주의자들중에서도 반개신교 성향을 띄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정통 개신교[10]가 육식과 환경파괴를 권장한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3.2. 역사[편집]


3.2.1. 과거[편집]
조선시대에 가톨릭이 유입되어 널리 퍼졌을 때, 이익의 제자들은 이를 수용하는 측과 이에 반대하는 측으로 나뉘었는데, 안정복은 '천학문답'을 지어 내세론을 통해 전도하는 모습이 불교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하였다. 당시 유학자들이 불교를 어떻게 여겼는지 생각하자. 이후 제례 거부 등의 문제에 따른 정부의 박해와 지속적인 서양 세력의 위협으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어느정도 드러났으며, '야소꾼', '야소쟁이' 등의 비칭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개화기 이후 서양 세력과 접촉이 빈번해지면서 기독교(구교/신교 모두)의 확산은 더 널리 이루어졌고 정부에서건 민간에서건 기독교에 대한 반응은 온건해진 편이었으나, 1920년대 이후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공산주의가 도입되면서 이러한 국면은 전환점을 맞는다. 그러나 이 때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상에 따라 '주적' 일본에 맞서기 위해 종교계와 공산주의 계열이 연대하는 경우도 있었으며(대표적인 것이 6.10 만세운동), 공산주의적인 비판의 중점은 단순히 종교가 아니라 식민지적 사회 체제 전반이었기에 따로 부각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광복 이후에는 북쪽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평안도 지역을 중심으로 대성하던 기독교 세력을 포함한 종교 세력이 전멸하였다.[11]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평안도 지역은 기독교도의 중심지였고, 평양은 한때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기독교도가 가장 많은 지역이였다. 반면 남한에는 미군의 원조와 함께 미국 개신교가 급속도로 유입되었으며, 가톨릭계 또한 3명의 추기경을 배출하고 1984년 교황이 내한하는 등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3.2.2. 반기독교 심리의 형성[편집]

그러나 민주화 이후 단군상 목자르기 등의 문화재 파괴와 타문화나 종교에 대한 편협하고 배타적인 태도,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무분별한 전도, 일부 기독교도들과 목사들이 벌이는 추태와 범죄, 기복적으로 변질된 신앙 등으로 서서히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사회에 조금씩 퍼져갔다. 그러면서 가르치는 교리 자체의 모순에 대한 지적이 늘어났으며, 이것은 인터넷 문화가 확산되어 가면서 논쟁의 궤에 오르기 시작했다.


3.2.3. 본격화[편집]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문화가 급속도로 확장되고 홈페이지를 개인적으로 만들던 시절 '이안티'라는 인물이 만든 반기독교 사이트가 방아쇠를 당겼다. 또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다음'의 카페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위의 인물이 만들어낸 카페인 '클럽안티기독교'가 설립되고 이후 인원이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이후, '검은십자가' 등의 반기독교 사이트가 생겨났지만, 누가 뭐래도 가장 유명한 곳은 '클럽 안티기독교'였다. 이것의 후신이 반기독교시민연합(약칭:반기련)이다.

초창기 안티 단체들은 단순한 논쟁과 기독교에 대한 비난만을 하는 단체였고 또한 이안티가 이후 클럽안티기독교에서 탈퇴하고 안티기독교 활동을 접은 이후로 어느 정도 표류를 하는가 했으나, 2003년 9월 러셀, 옹기쟁이, 꽹과리 등 네임드 안티들이 다음까페(클안기)의 한계를 벗어나고 안티기독교 운동이 시민운동으로서 나아가겠다는 목적으로 반기련을 창설한다.

마침 한국 기독교를 신랄하게 비판한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를 통하여[12] 출판에 대한 영감을 받은 이들은 반기독교 서적의 번역 작업 및 프로메테우스가 시도하고 있던 성서무오설 비판까지 더하여 학술적인 반기독교로 발전하게 되고 '바이블 19금 제정 서명운동' 등의 활동을 펼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과 새로 유입된 반기독교 성향의 사람들의 시민운동주의 성향이 맞닿아 결국 반기독교 사진전과 출판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서, 기독교가 직접적으로 반기독교에 대해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뉴스앤조이를 제외한) 국민일보와 같은 기독교 계열 신문에서 반기독교가 위험하다고 성토하기 시작한다.


3.2.4. 분열[편집]

이렇듯 무섭게 성장하던 반기련이었으나 사람 모이는 곳에 갈등과 분열이 있는 건 반기독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5년 10월에 벌어진 일명 '영자의 난'이 대표적이다.

2005년 5월 반기련은 중앙사무실을 연천에 개소했다. 보다 확실한 반기독교 운동을 위한다는 목적이었다. 고사의식을 통한 거창한 사무실 개소식도 하였고, 당시 반기련의 서버운영자였던 '옹기쟁이'가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제출하고 유급 사역자로 연천 사무실에 상주했다. 이른바 '직업 안티'를 만들겠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반년도 못되어 각종 돈 문제와 관계자들 간의 오해와 비난이 얽혀 갈등이 엄청나게 커졌고, 결국 반기련의 네임드인 문학비평, 러셀, 옹기쟁이, 이드, 광복군, 인즉신 등이 탈퇴하여 종비련(종교비판자유실현시민연대)을 창설하였다. 종비련은 반기련의 교조주의적인 안티활동을 비판하며 자신들은 합리적인 종교개혁 운동을 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첫번째 활동으로 종교인 납세운동(주로 개신교회를 겨냥한)을 전개하였다.

당연히 반기련에 남은 사람들은 이들을 배신자, 변절자라 부르며 욕했고 탈퇴한 종비련 소속 사람들 역시 자신들의 정당성을 변호하며 한동안 추잡한 싸움이 이어졌다. 반기력 측에서 특히 문제삼은 것은 종비련이 '기독교 박멸'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타협을 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종비련 측은 여전히 자신들의 목적은 기독교의 박멸이라 주장하며 반기련 회원들의 저열함을 탓했다. 중도에 선 사람들이 사태수습을 위해 노력한 끝에 그럭저럭 갈등은 봉합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또 종비련 내부에서 운영과 금전상의 문제가 얽혀 핵심인물이었던 '이드'가 후원 그룹을 데리고 이탈하여 종추련(종교법인법제정추진시민연대)을 창립하였다.아주 분열이 끝도 없다 창립자가 빠져나간 종비련은 속빈 강정이 되어 추동력을 잃고 명맥만 유지하다가 얼마 안가 사라져버렸고, 종추련 또한 몇번의 활동 끝에 수명이 다 되어 사라져버렸다.

반기련도 내부적으로 평온하지 못했다. 2005년의 혼란을 간신히 수습하고 그 후유증이 가시기도 전에, 2007년에는 서버 관리자인 '유령'이 자신이 운영하던 반기련 서버를 해킹하고 반기련을 떠나는 대형사건이 터졌다. 영문을 모르는 회원들은 반기련 사이트가 접속이 되지 않자 '기독교인의 소행이다, 정부의 짓이다' 등등 음모론을 꾸미기에 여념이 없었다. 몇몇 사람들이 임시 사이트를 만들고 비상대책위원회가 조직되어 간신히 복구에 성공한뒤 알아본 결과, 사건의 원인은 유령과 반기련 집행부의 일부 회원과의 갈등 과정에서 잡음이 심해진 것이었다. 반기련은 또 내부에서는 유령을 두둔하는 쪽과, 비난하는 쪽의 논쟁으로 패가 갈려 몸살을 앓아야 했다.

한국 개신교의 분열, 반목과 비슷한 양상을 띄는 것 같다. 극과 극은 통한다.


3.2.5. 현재[편집]

여러번의 분열과 네임드 회원 다수의 탈퇴로 인해 반기련은 예전보다는 세력이 축소되었다. 물론 여전히 국내의 반기독교 세력 중에는 가장 거대하고 강성한 단체이긴 하나, 분열의 상처는 회복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리처드 도킨스로 인해 촉발된 무신론 운동이 국내에서 반기독교의 자리를 대신해버려서, '반기독교 운동' 자체가 시들해졌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반기독교인들 중 상당수는 보다 논할것도 많고, 뭔가 '그럴듯해' 보이는 무신론 쪽으로 거처를 옮겼고 새로 유입되는 사람들 또한 무신론 쪽에 많은 실정이다.[13]

참고로 지금도 기독교 개혁을 주장하는 온건 안티와 기독교 박멸을 주장하는 극렬 안티가 물과 기름과 같은 사이인건 마찬가지다. 기독교 박멸을 기치로 내세운 극렬 안티의 대부분은 아직까지도 온건 안티를 기독교와 동일시한다.근데 온건한 안티가 있긴 한가? 단지 현재에 와서 이런 갈등이 부각되지 않는 이유는 극렬 안티가 반기독교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득세하고 온건 안티는 그런 극렬 안티의 등쌀을 못 이겨 안티 활동을 접거나 조용히 활동하기 때문이다. 예수쟁이와 개념 기독교인의 관계와 비슷한거 같다


[1] 당연히 개독 안티와는 다르다. 개독안티는 그냥 사회에 문제일으키는 개신교인들, 즉 개독들만 싫어하는거니 정상적인 기독교인 중에도 있다. 반기독교는 기독교란 종교 자체를 반대 혹은 적대하는 것이다.
[2] 기독교 문화권 내부에서 생기는 반감도 있었겠지만, 보통 크게 드러나지는 않고 개개인 수준에 머무르거나, 드러난다 해도 '현재의 기독교'를 개혁해서 '새로운 기독교'로 바꿔야 한다는 방향으로 흘러 본격적인 반기독교에 이르지는 못했다.
[3] 단, 많이 응용되는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말은 인간 사상의 전환에 관한 내용이다.
[4] 진중권백지연끝장토론에서 레이디 가가 내한 반대 사건에 대해 논할 당시 이 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
[5] 실제로 가톨릭의 공식적인 교리 입장만 놓고보면 세속 정부에 대한 내정간섭을 하려고 한다는 비판(예를 들면 사형, 낙태)을 제기할수도 있다. 물론 가톨릭도 어디까지나 사회의 구성원 입장에서 하나의 '입장'이나 '의견'을 제시할 수 있긴 하지만 세속 정부에 대한 내정간섭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6] 하지만 공산국가의 대표격인 소련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으며 전체 국민의 30% 이상이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물론 실제로는 더 많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무조건 탄압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정권에 따라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밀어주기도 했다. 게다가 소련이 무너진 이후로는 러시아 정교회가 거의 국교화된 상황. 이에 대해선 러시아 정교회 항목을 참고할 것.
[7] 그 때문에 본 항목에 나와있는 반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이름만 살짝 바꾸면 대부분 무신론 진영에도 적용된다
[8] 애초에 반기독교vs무신론이 아니라 무신론 내부에서도, 항상 이와 유사한 분열들은 존재했다
[9] 물론 이런 사람도 소수는 있겠지만, 국내 주요 반기독교 단체들 내에서는 정작 이런 사람들이 밀려나고 음모론자, 환빠, 극단적인 국수주의자 등이 주류를 이루는 바람에...
[10] 채식을 권장하는 안식교등의 이단을 제외한 일반적인 주류 종파
[11] 물론 주체교는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국교화되어 크게 세력을 떨쳤다.
[12] 단, 오강남 교수의 이 책은 어디까지나 기독교 내부의 개혁과 성찰을 촉구하는 거지 반기독교에서 주장하는 '기독교 박멸'과 같은 과격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13] 이런 이유 때문에, 국내의 무신론 운동은 아래에서 말할 반기독교의 문제점까지 대부분 이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