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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heism.kr

들어가기에 앞서서.


교리문답에 대해서 이것저것 설명을 붙여 넣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신학에 조예가 깊지 못한 경우에는 더욱 그럴 것입니다. 저는 신학도도 아닙니다. 변증(辯證)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학이란 고래(古來)로부터 답하는 자로서의 역할을 다했고, 지금도 그러한 역할이 맡겨져 있음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최대한 변론하고자 합니다. 원 글은 재반박을 위해서 그대로 가져다가 쓰려고 합니다. 몇몇 부분은 불가피하게 동의하여야 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현재 카톨릭 신학계 내에서 논의되고 있지 않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변화들이 아직 반영되지 않은 것일 뿐입니다. 개신교도로서 최대한 변호할 수 있는 바대로 해보고자 합니다. 좋은 논박은 그와 같이 달았고, 영 아닌 것은 따로 달진 않았습니다. 되도록이면 많은 정보를 담아보려고 노력은 했습니다.


아주 부족합니다. 태클, 의견, 새로운 정보, 수정요청 너무너무 환영합니다.


(원문대조)

천주교 교리문답

반박
참고용 인용자료

재반박 및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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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인생이란

문 : 우리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까?
답 :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으로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이 되어,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답 : 엄마랑 아빠가 응응응해서 태어났으며, 항상 사랑이 전제된 것은 아닙니다. 삭막하다고 느끼셔도 할 수 없습니다.

- 다시 묻습니다.

- 왜(Why)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How)라는 해석으로 변경되어서 읽혔습니다. 잘못된 오독(誤讀)입니다.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위해서'라는 목적에 대한 것을 묻는 것인데,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형상에 관한 물음입니다. 질료가 어떻게 변하는 지에 관한 물음이 아닙니다.


문 :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 : 천주교회에서 베푸는 세례를 받고,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신 계명대로 살아야 합니다.
답 : 하늘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구하려 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십시오.

- '인간이 되다'라는 의미에 대해서 명확하게 인지할 수 없음. 아예 반박할 수 없음. (문제의 내용을 모르겠습니다.)

- 인간이 되다라는 표현이 니체가 이야기하는 절대 존재자로부터의 탈출, 탈종교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문 : 세례를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답 : 세례를 받으면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요한 복음 3장 5절)
답 : 옷 버립니다. 그리고, 낙동강 같은데서 하면 피부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ㅆㅂ. 한달 동안 고생했다. 그리고는 순뽁음 교회에서 다니엘로 불렸다. 개신교회는 뭐 강아지나 송아지나 세례주더라.)

- '세례를 받으면'이라는 의미는 단순히 물을 끼얹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답변은 극단적인 질료적 사고방식입니다. 물질주의요. 의식(ritual)의 의미와 해석에 대해서는 단 한치도 생각할 수 없습니까?

ㅇ아버지 하느님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는 최선을 다한 논증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에게 독특한 부계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설득시킬 수 없었다. 그의 친구들은 말리노프스키의 견해를 선교사들이 꾸며 낸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로 생각했다.
기독교는 가부장적 종교이다. 따라서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 부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버지 하느님’ 대신에 ‘외삼촌 하느님‘이라고 말해져야 한다면 이것은 암시된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부권은 권위와 사랑을 동시에 의미하지만, 멜라네시아의 외삼촌의 경우는 권위만을 가지며 그 경우 아버지는 사랑만을 가지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라는 관념은 트리브리안 군도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느 사람이 어떤 남자의 아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곳에 간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종교에 대해 설교하기 전에 먼저 생리학적 사실을 가르쳐야만 했다. 말리노프스키에 의하면,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첫번째 과업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따라서 성서의 가르침 역시 전파할 수 없었다.
(버트란드 러셀, 결혼과 도덕 中)


- 개인적으로 가부장적 종교, 가모장적? 종교이든간에. 종교는 단순히 하나의 의미로만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상과 연결지어서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원전 1세기 내지 기원후 1-2세기의 중동 내지 로마, 그리스 사회, 유대 사회 내에서 이런 논쟁은 의미 없다고 봅니다. 종교의 교리 자체가 언제나 완전무결하고 변하지 않는 것따위랑은 거리가 멀답니다. 크리스트 교만큼 교리의 변천이 극심하게 이어져 오는 종교도 그렇게 많지 않음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문 : 하느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답 : 하느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오늘도 이 우주를 다스리시는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답 : 그렇다고 해도, 그 분은 야훼가 아닙니다.


- 개인적으로는 야훼이든 하나님이든 하느님이든 이름은 그닥 중요한 개념이 아니라고 보는데, 어찌되었든간에 그건 그렇게 생각할 여지가 충분히 있는 질문이고 답입니다.


문 : 하느님은 의로운 분이십니까?
답 : 하느님은 의로운 분이십니다. 그래서 착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시고 악한 이에게는 벌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답 : 성경을 보건데 별로 의롭다고 할 수 없으며, 전능자로서, 또 창조주로서의 하느님은 의로워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전능자가 선악에 매달려서야 어디 전능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 의롭다를 정의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에 대해서 벌주어야 할 자를 벌 주시니 공의로우시며, 건져내야 할 자를 건지시니 자비로우시다. 그러므로 모두에게 하나님은 의로우신 자로다라고 하였으니, "의로움은 우리가 그 분을 볼 때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신을 하나의 성질을 가진 존재로서 정의하기 보다는 중세에는 존재 자체로 본 측면이 더 큽니다.

문 : 하느님과 우리의 인생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답 : 우리의 생명을 만드신 분이기에 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기에, 우리의 생명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가르침에 우리 자신이 오로지 순종할 때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허락됩니다.
답 : 하느님(존재한다구 치구)은 우리 인생에 관여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장난감이 아닙니다.


- 예, 맞습니다. 우리는 장난감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신율(神律)적인 목적을 갖습니다. 이것은 자율과 타율 그 어느 것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신께서 주시는 예지를 우리가 기뻐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유의지론에서 주의 예지하심과 우리의 행위 사이에는 인과가 성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예지하신 바 그리되었으나, 그것은 우리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으로 정의 내립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에 대해서 행복에 대한 예시를 들었는데, 만약 신께서 당신이 행복하게 되는 것을 예지하신다고 가정합시다. 그런데, 만약 우리의 자유의지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당해야 되는 행복을 맞게 됩니다. 그것은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와 같은 논변으로 자유의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자유의지론의 결론부를 찾아가게 되면, 자유의지론은 결국 선과 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는 방식을 자유로이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긴 합니다.

나는 인류의 상당수가 신을 믿지 않으면서도 눈에 보이는 벌을 받지 않는 것을 보았다. 내 생각으로는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들의 공격에 대해 그렇게 쉽지 않은 여유와 허영을 보일 것 같지는 않다.(버트란드 러셀, 불가지론이란 무엇인가? 中)


- 기독교의 특징 중에 하나는 종말론적 신념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결국(Finally)라는 한 단어로 함축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있는 세상에 악이 왜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신정론(神正論)이라고 합니다. 신정론의 처음 첫 단추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플라톤주의를 인용하여 이와 같이 주장합니다. "악은 없다." 물론 존재론적으로 없다는 말입니다. 신플라톤주의에서 나타나는 일자(一者)-Nous(누스)-psyche(프시케, 세계혼)-인간, 동물, 식물-질료로 이어지는 한 줄기에서 오직 질료인 것은 무존재로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결국 인간이 겪는 악에 대한 문제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다만, 우리의 감각세계에서 이를 느끼고 있을 따름이라는 견해를 내놓습니다. 이 견해는 근대와 현대로 가면서 바뀌는데, 이것은 충분한 설명이 더 덧붙여져야 해서 이쯤에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문 :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답 : 우주 안에 가득 찬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보면 이것을 만드신 창조주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동차가 있으면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 있어야 하고, 집을 보면 집을 지은 사람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답 : 자동차나 집을 사람이 만들었다고 해서 하느님이 계신다는 증거는 될 수 없지만, 만약 하느님이 계시다면 하느님을 창조한 존재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분을 비포신(The Beforegod)이라고 부릅니다.

만약 모든 것에 원인이 있다면 신도 반드시 원인이 있어야 한다. 만약 원인이 없는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다면 신과 마찬가지로 세계도 원인이 없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논변에는 하등의 타당성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인도인들의 생각과 똑같은 성격을 가진다. 즉, 세계는 코끼리 위에 있고, 코끼리는 거북이 위에 놓여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거북이는 어떻게 되어 있죠?”라고 묻는다면 인도인들은 “주제를 바꾸죠.”라고 말한다. 신에 대한 위의 논변 역시 이것보다 조금도 나은 점이 없다.(버트란드 러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中)

어느 누구도 지구와 화성 사이에 타원의 궤도를 그리며 돌고 있는 도자기 주전자가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실제 생활에서 이것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기독교의 신이 이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친애하는 버트란드 러셀 中)


- 자연신학의 개념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거나, 그러한 역사적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않은 것입니다. 자연신학은 우리 주변의 사물에까지도 신의 속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신(多神)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세계 만물이 주의 아래에 있는 것을 나타내는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세상의 아름다움에서 주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합리주의 신학계통의 시작입니다. 자연신학이 없었으면, 정말 계시신학에서 머물렀을 것입니다.) 최소한 카톨릭은 교회전승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습니다. 교회의 전통적인 의견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요즘에도 자연신학은 계속 있습니다만, 약간 변형된 형태로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 말씀 드리는 것들은 중세의 자연신학을 말합니다.

문 : 하느님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답 : 하느님은 한 분이신데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 세 위격(位格)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이것을 삼위일체 교리라고 합니다.
답 : 내가 보기엔 안 계실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리고, 성자는 성자일 뿐이며, 성령은 성령일 뿐입니다. 뭐하러 복잡하게 세 위격을 가져야 합니까? 혼자해도 다 하실 수 있는 전능자이신데요...


- 3위격에 대해서 여러가지 말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왜 3이냐는 것입니다. 0도 아니고, 1도 아니고, 2도 아니고 3이요. 왜 3을 달아놨습니까? 바로 이것이 질문이 되어야 합니다. (플라톤의 3요소: 영혼-동력, 형상-설계도, 질료-재료도 영향이 있지 않은가라는 견해도 있고,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이 크다고 봅니다. 당시 신플라톤주의의 학자들에게서 몇가지 개념이 나오는데, 우선 삼중적 일자(一者)라던가, 중재자라던가 뭐 이런 여러가지 설설설들이 나오면서 이것들이 기독교 신학 가운데로 전이된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 일단 삼위일체의 설명은 교회에서는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개념 자체가 신비주의가 세계를 휩쓸던(세계는 서방세계를 말합니다.) 3세기 무렵부터 정통으로 나타납니다. 우리에게 비추어지는 것 즉, 주(主)의 Persona(페르소나)가 3가지로 나타나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부터 보통 나오긴 합니다만, 오죽하면 삼위일체의 신비라고까지 이야기하겠습니까.(그것도 스콜라철학이 판을 치던 중세조차, 물론 안셀무스나 토마스는 이것도 좀 쪼개볼려고 했습니다만...) 현대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일신성이나 삼신성이나 모두 부정하긴 합니다.

- 세 위격을 가져야 하는가? 가져야 하는 가라기 보다는 가진다고 합니다. 설명이 아니라 기술된 것인데...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ㅇ원죄

문 : 하느님은 인자하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어찌하여 우리에게 죽음과 온갖 고통과 여러 가지 불행한 재앙을 주십니까?
답 : 그것은 인류의 조상이 원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답 : 원죄를 범했다고 하여 고통과 재앙을 주시는 하느님은 인자함보다는 본전찾기에 급급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사실 본전을 찾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잘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 어쨋거나, 원죄론에 대해서 잠깐 설명을 덧 붙이자면 원죄론은 혈통설이 정통교리로서 받아들여지곤 합니다. 아벨라르의 의지론이 들어오고 나서는 조금 바뀌려다가 말았습니다만, 혈통에 의해서 우리는 아담의 죄에 참여한 것이다라는 것인데, 사실 지금은 혈통설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인간의 원래적 죄성(키르케고르에 의하면 불안, 절망, 단절감, 소외, 상실 등)을 말하는 것으로 봅니다.


문 : 원죄는 어떤 죄입니까?
답 : 인류의 으뜸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마귀 유혹에 빠져, 금지된 실과를 따 먹음으로써 교만한 죄와 순명치 아니한 죄를 범한 것을 원죄라고 합니다.
답 : 아담과 이브(하와)는 교만한 적이 없었으며, 순명치 않았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또 다른 피조물인 뱀에게 속은 것입니다. 상징적으로 보아 원죄는 인간이 무뇌아로 남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생긴 듯 합니다. 즉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줄 의사가 없었던 듯 합니다. 그렇지 않다고 하려면 원죄가 아니라 저주로 정의되어야 합니다.

죄의 개념에는 논리적인 난점이 있다. 우리는 신의 명령에 대한 불복종이 죄를 구성한다고 알고 있다. 또한 우리는 신이 전능하다고 알고 있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의 의지에 반대되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죄인이 신의 명령을 거부한 것이라면 그것은 신이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과감하게 이런 견해를 받아들여 신은 인간의 눈을 멀게 함으로써 죄를 이끌어 간다고 주장했다.(꽥!) 그러나 현대의 신학자들의 대부분은 만약 신이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했다면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죄가 신의 의지에 반대하는 행동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적 난점을 극복하지 못한다. 스피노자처럼 신을 전능하다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죄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연역해 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스피노자의 동시대인들은 "네로가 어머니를 죽인 것은 악한 짓이 아닌가?", "어떤 행동이 다른 행동만큼 선한가?"라고 따졌지만 스피노자는 우물쭈물하면서 만족할 만한 대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만약 모든 것이 신의 뜻에 따라 일어난다면 신은 네로가 어머니를 죽이기를 원했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신이 선하다면 살인은 선한 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 논변에는 탈출구가 없다.(버트란드 러셀, 인기없는 에세이들 中)


- "그러나 현대의 신학자들의 대부분은 만약 신이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했다면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네,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근데, 위에서 설명했듯이 자유의지론의 기본이 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유의지가 죄에 필요하다고 보죠. 그 분은 죄를 신을 가장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질료를 더 사랑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뭐 그래서 결국 지금도 이런 정의가 통용되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어쨋거나 자유의지론의 기본은 예지되나 의지가 있어야 한다라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 그리고 스피노자는 이신론(理神論)의 대표적인 사상가입니다. 사실상 신의 의미가 없다고 봐야됩니다. 세상에 개입할 수 없이 단순히 로고스로서만 존재하는 신(神), 그건 현대 물리학자들도 모두 인정하는 신인데요. (신=자연법칙) 그런 신은 일단 기독교의 신이 될 수는 없습니다.

- 또, 신의 뜻에 의해서 벌어지는 것이다라는 것. 이것은 과정 전반으로 보고 파악해야 합니다. 근대의 신정론이 이렇게 구성됩니다. 작은 시간의 부분에서는 악으로 보일지라도 신의 과정 전반으로 본다면 그것은 선이 된다. 물론 현대에 와서 무슨 개소리냐라고 쪽만 맞고 나가리 됩니다. 현대는 오히려 수난가능성, 고난에 동참하시는 하나님으로 변경되서요...


문 : 인류의 조상이 원죄를 범하기 이전에는 어떤 상태였습니까?
답 : 하느님의 자비로 인간은 죽지도 않고 바로 하늘나라에 갈 수 있었습니다.
답 : 아닙니다. 하느님은 처음부터 인간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지배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은 어림도 없습니다. 창세기 3장 44절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생명나무 열매를 못 먹게 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육으로서의 영생과 영으로서의 영생은 차원이 다르다고 변명하지 마십시오.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이전의 축복
세계의 자연적 결과는 인간의 생존을 위해 만들어졌다. 어떤 신학자들에 의하면, 심지어 흰 꼬리의 토끼도 소위 스포츠맨들이 사냥하기 좋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약간의 불편도 있다. 예를 들어 사자와 호랑이는 너무 사납고 여름은 지나치게 덥고 겨울은 지나치게 춥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이후에야 시작된 것들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이전에는 동물들이 채식만을 했고 계절은 항상 봄이었다. 만약 아담이 복숭아와 숭도복숭아, 포도, 배 그리고 파인애플 등으로 만족했더라면 그 축복은 아직도 우리들의 것이었을 것이다.(버트란드 러셀, 인기없는 에세이들 中)


- 일단 기독교 신앙에서 육과 영은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어요. 육과 영은 항상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영이 육의 옷을 입는 것은 플라톤의 사고에서 출발합니다.(육신은 영혼의 감옥이다.) 이것에 대해서 후대의 기독교 전통에서는 영과 육을 하나로 봅니다.(분리에서 연합으로 변경, 분리설이 되면 영혼선재설, 영혼윤회설이 가능함.) 물론 영이 우위에 있습니다. 영은 감각에 사로잡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에 '주의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영육의 분리 즉 죽음 이후에 주의 나라가 땅에 임한다는 것은 영이 육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독교 신학관에서 영육의 분리는 죽음입니다. 따로 놀 수가 없어요. 예지와 그것이 왜 죄로 바로 전이되지 않는지는 자유의지와 같은 부분에서 이미 많은 부분 설명했다고 보여집니다.

- 밑에 있는 참고 인용하신 것은 플라톤주의적인 입장에서의 기독교입니다. 물론 그것이 기독교 전통의 바탕이고, 기본적인 토대이긴 합니다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창조와 진화의 관계를 단순히 창조가 아니면 진화다라던가 진화가 아니면 창조다라던가, 상호가 그렇게 배척되는 의미인 것은 아닙니다. 이른바 과학적 창조론을 옹호할 생각도 없고, 하등 쓰잘데기 없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창조의 의미가 중요한 것이지(무에서부터의 유), 창조행위는 그닥...

문 : 인자하신 하느님은 왜 인간이 원죄를 범하도록 버려 두셨습니까?
답 : 인간은 인격체입니다. 인격체는 자기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는 지능이 있고, 자기 뜻대로 행동할 수 있는 온전한 자유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이렇게 고귀하고 온전한 지능과 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 자신들이 생각을 잘못했고 행동을 잘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간섭으로 범죄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 선행은 인간이 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런 행동으로는 천국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잘못 쓴 것이지 하느님이 인간을 버린 것이 아닙니다.
답 : 선악을 모르는 것이 마음대로 생각하는 지능이고 뜻대로 행하는 자유의지라면 할 말 없습니다. 선악을 아는 것이 악이라고 정의하시는 하느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곧 판단하는 것을 알게 하는 나무를 의미합니다. 그 이야기는 죄악의 탄생이란 것인데, 죄악의 탄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통 해석합니다. 판단하게 됨으로써 상대(相對)를 대상(對相)으로 그리게 되니 이것이 결국 타자와의 분리를 낳습니다. 결국 인간과 신이 멀어지는 것입니다. 경건주의, 정통주의에서는 불순종으로 해석합니다. 불순종한 것이 인간에게 죄로서 시작되었다라고 봅니다. 여기서도 결국 자유의지가 문제가 되긴 합니다. 과거처럼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시대는 갔습니다. 현대 기독교에서도 그 창조주간과 에덴에서의 추방에 대해서는 상당히 유연하게 해석하고 있음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아주 상징적으로 봅니다. 과거의 원죄교리를 그래도 유연하게 해석해나가는 것을 보면 상당부분 변화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ㅇ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문 : 하느님은 범죄한 인류를 그저 버리고 말았습니까?
답 : 아닙니다. 한없이 자비하신 하느님은 인간을 다시 살리려고 구세주를 약속하시고 후에 과연 보내 주셨습니다.
답 : 아닙니다. 저주는 직접 회수하실 수 있으며, 원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이 약속하신 구세주는 다른 성격의 것입니다.


- 교리문답에서 잘못된 것을 반박하시는 것인데... 주장을 하시는 것이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근거는...

문 : 구세주는 어떤 분이십니까?
답 : 구세주는 삼위일체의 둘째 위격자이신 천주 성자께서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메시아’라고도 합니다.
답 : 예수 그리스도의 위상은 인간이 정한 것일 뿐이며 이는 하느님께 대한 짝사랑의 행위와 다름 없습니다.

문 :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사람이 되셨습니까?
답 :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신성을 지니면서 동시에 인간성을 취하시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 날을 ‘크리스마스’라고 하면서 온 세상 사람들이 이 날에 축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천주교회에서는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구세주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성모님을 하느님처럼 흠숭하는 것은 아닙니다.
답 : 예수는 인간일 뿐이며, 크리스마스는 이교도의 축제일을 차용한 것이고, 마리아는 어느 시골의 무식한 애 엄마일 뿐입니다.

그리스정교는 성령의 이중 발현과 교황의 지상권을 부정한다는 점 때문에 비난을 받는다. 비록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나타났지만 그리스도는 그의 육체 때문에 성령의 아들로 생각되어져서는 안 된다.(버트란드 러셀, 서양철학사 中)


- 러셀의 서양철학사라.. 아 묘하군요. 어찌되었건간. 이어가자면요. 일단 이 문답의 핵심은 신-인이신 예수와 성모에 대한 부분입니다.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 짚어주셔야 되는 것인데, 필리오케 논쟁에 대한 이야기를 안할 수 없습니다만.. 그 부분은 너무 길어지니깐 찾아봐주셨으면 하구요.

- 기독교 신학은 기본적으로 역설(paradox)에서 출발합니다.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그리스 철학에서 빌려오던 당시 교부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로고스의 육화라고 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원리가 몸을 입었다는 의미로 사용하는데요. 예수에 대한 서방교회의 전통은 신-인의 균형입니다. 참 하나님이자 참 인간이라는 표현은 여기에서 도출합니다. 참 인간이어야 죽을 수 있고, 참 하나님이어야 부활하실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학의 이해는 다름 아닌 역설(paradox)의 수용여부에 따른 것입니다.

문 : 성모 마리아는 어떤 특전을 받았습니까?
답 : 마리아는, 예수님이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는 특전을 받았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원죄도 본죄도 없이 태어나신 ‘무염시태’의 특전을 받았으며, 죽으신 다음 육신체로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분이십니다. 이 날을 성모승천 대축일(8월 15일)이라고 합니다.
답 : 그랬을 것이라는 기대와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에 만든 말일 뿐 무염시태도 아니며 승천했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 증거에 대해서 생각해본다면, 우리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역사적 예수탐구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인간 스승으로서의 예수를 깊게 조명합니다. 슈바이쳐(그분 맞습니다.)의 역사적 예수 탐구의 결론은 결국 예수에 대한 역사적 내용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을 가지고 그 분의 생애 전체를 조명하는 것은 어렵다라고 결론 짓습니다. 이후 20세기의 신학을 그래서 위기신학(crisis theology)라고 합니다. 예수 연구가 불가능한데, 어떻게 신학이 나가야 하는가! 그 이후에야 비로소 신정통주의 사조가 등장합니다. 신(神)과 신(信)의 관계가 어떠한지, 단절되어 있는 관계에 대한 해석과 같이 신의 증빙 문제는 사라지고, 신과의 관계 문제가 오히려 드러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앎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즉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예수 탐구는 신학의 붕괴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다만, 이제야 신학은 사실에 집착하는 것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탐구의 시대로 접어든 것입니다.

문 :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답 : 예수님은 우리가 범한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써 당신 보혈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답 :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이렇게 허접한 방법으로 인간에게 죄책감과 동정심을 유발하려 하셨습니다.


- 이른바 속죄론의 기초가 되는 안셀무스의 만족설인데요. 만족설 이전까지는 사탄에게 죄값을 치루어야 한다는 설이 강했습니다만(이원적 세계관), 안셀무스 이후에는 신에게 바쳐지는 메시야라는 의미로 나타납니다.(기독교의 당시 일원적 세계관과 완전히 부합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신을 만족시킬 수 없음을 강력하게 주장하죠. 오직 신을 무한하게 만족시킬 것은 죄없는 오직 신 그 자신 뿐입니다.

문 :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다음에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답 : 돌아가신 다음 사흘만에, 미리 말씀하신 대로 당신 전능으로 영혼과 육신을 결합하여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을 예수 부활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사십 일 간 제자들에게 가끔 나타나셔서 제자들을 격려하시고, 사십일 후에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것을 예수 승천이라고 합니다.
답 : 예수승천은 엄청나게 중요한 일인데, 왜 마태서와 요한서의 저자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는지 그것부터 해명해야 합니다.


- 보통 최초의 기록된 사중복음을 마가복음이라고 봅니다. 마가복음을 기초로 누가와 마태복음이 쓰여지고, 가장 마지막에 요한복음이 쓰여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요한복음의 경우에는 다소 늦게 작성되어 예수 부활이후 70년이 지나서야 써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경우에는 헬라철학적 요소가 강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말씀의 신학 - 로고스Logos의 신학 - 로고스는 어디서 왔나? 그리스..) 예수 승천도 중요한데요. 그렇게 보면 안 중요한 게 없습니다. 다 이적이고 신의 말씀이고 신의 행동 아닌가요...? 성서가 '쓰여진 것'임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서는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누가 쓴 겁니다. 배껴도 쓴거구요. 그걸 이해하고 들여다봐야죠. 역사적 탐구의 끝에는 사실에서 의미로의 전환이 튀어나옵니다. 성서무오설은 요즘에는 주장이 안됩니다.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오히려 성서 해석학이 대두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문 :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다음에는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답 : 예수님은 승천 후 열흘만에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것을 ‘성령강림’이라고 합니다.
답 : 베드로의 주장일 뿐 아무런 증거가 없습니다. 해가 어둠이 된 적도 없고 달이 피가 된 적도 없습니다.


- 해가 어둠이 되었다거나, 달이 피가 되었다거나..? 사도행전에 나오는 건가요? 제가 지식이 짧아서요..

문 : 성령은 어떤 분이십니까?
답 :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의 사랑에서 나타나는 하느님의 제 삼의 위격이십니다. 성부와 성자와도 같은 하 느님이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한 분인 하느님이십니다.
답 : 말장난일 뿐입니다.

문 : 삼위일체 교리를 어떻게 알아들어야 합니까?
답 : 이 교리는 인간의 두뇌로는 알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신비한 내적 생명이시고 하느님이 계시하신 교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계시진리를 수용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답 : 이제서야 실토를 하시네요. 걍 믿어야 하는 것일 뿐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하느님은 한 분이라는 것과 예수의 신성이 서로 모순되고 있고, 또한 헬라철학의 영향으로 3이라는 숫자에 집착한 결과의 인간이 하느님을 울트라맨마냥 변신의 귀재로 만든 것입니다. 예수≒하느님이라면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자주 불렀던 아버지는 그럼 비포신입니까?


- 헬라철학의 영향으로 3신관이 되었다는 것은 좋은 지적입니다. 다소 그렇게 보여지는 구석은 상당히 있다면 있다고 보여지고, 신플라톤주의의 도입에 있어서 약간 그런 부분은 있습니다. 다만, 그 해석은 다소 무리가 있는데요. 그 삼위일체는 인간의 관점에서 하나님을 바라볼때 그렇다는 것이지, 그 분 스스로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삼위일체에 대해서 애매하게 말할 수 밖에 없어졌죠. 지금이야 신도 대상(對相)으로 만들어서 조명하는 시대인데요.. 신이 객체가 되고, 내가 주체가 되면 내가 해석하는게 왕입니다. 그러다보니 내 쪽에 보여지는 것이 마냥 사실이 되는 거죠..

ㅇ성경과 성전

나는 내 자신이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이, 성서적 예언 같은 것이 실제로 있다면 모든 것을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진짜로 성서적 예언을 시사하고 있다는 견해에 동의할 수 없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신학적 저술을 원시 부족들의 유치하지만 때때로 흥미 있는 환상적 세계의 보잘것없는 역사로서 좋아한다.(친애하는 버트란드 러셀 中)

문 : 계시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답 : ‘계시’는 ‘열어 보인다’는 뜻인데 우리 인간이 전연 알 수 없는 초월적인 진리를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진리입니다. 계시의 내용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답 : 성경 이외에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무효입니다.


- 계시를 상당히 좁게 해석하시는데, 계시는 교회에게도, 개인에게도, 심지어 자연에도 있습니다. 계시신학은 그렇게 좁은 범위를 가지지 않습니다. 계시의 대표적인 것이면서 계시를 '판단'하는 '근거'가 성서인 것이지, 성서가 모든 계시를 다 포괄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서에 모든 계시를 묶어두면, 신을 제한하는 행위가 되어버립니다.

선교사들은 기독교 교의의 우수성은 계시에 의해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다른 종교들 역시 같은 주장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마니교 신자들은 생선을 제외하고는 어떤 고기를 먹는 것도 죄라고 생각한다. 18세기의 러시아 독립교회 두코보르스의 신자들은 병역을 거부했다. 그러나 캠프파이어 주변에 둥글게 모여 나체로 춤을 추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러시아에서 박해를 받고 캐나다로 이주했지만, 거기에서 다시 박해를 받았다. 몰몬교 신자들은 일부다처제의 성스러운 계시를 받았지만, 미국 정부의 압력 아래서는 그들의 계시가 구속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버트란드 러셀, 윤리학과 정치학에 있어서의 인간 사회 中)

문 : 성경은 무엇입니까?
답 :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 기록된 책입니다. 예수님 이전에 쓰인 성경을 구약성경이라고 하고, 예수님이 오신 다음에 쓰인 것은 신약성경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 중에도 기록되지 않고 내려오는 것을 ‘성전’이라고 합니다.
답 : 약속을 바꾸시는 하느님은 인간적일지는 몰라도 전능하지는 못하신 것 같습니다. 성전은 무효입니다.


- 사정변경의 원칙이라고 혹시 아시는지요? 계약 당사자간의 중대한 상황의 변화가 있으면 계약도 바뀝니다... 하물며 인간 계약도 그렇게 바뀌는데, 구원이면 뭐 말할 것도 없죠. 게다가 본인께서 오셔서 나는 계약을 완성하러 왔다고 하셨지 계약을 갱신하러 오셨다는 얘기는 안하셨으니깐요...


문 : 성전에 대한 성경의 말씀이 있습니까?
답 : 있습니다. 4복음이 끝나는 제일 마지막 부분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하셨다. 그 하신 일들을 낱낱이 다 기록하자면 기록된 책은 이 세상을 가득히 채우고도 남을 것이라고 생각된다.”[요한21:25]
답 : 어떤 일이든지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승천하셨고, 섹스를 하신 적이 없으시며, 교황성하는 매독에 걸렸어도 무오하시며, 면죄부는 하느님이 예수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인간에게 내려주신 보혜사(事) 등등 모두다 성전입니다.


- 교황무오설만 좀 짚고 갑시다. 교황무오설은 그렇게 쉽게 성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무염시태의 무오선언은 그 당시에는 좀 충격이라고 하긴 합니다만. 피우스 교황께서는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카톨릭 교회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하셨어야 할 시대적 상황이었으니깐요. 어쨋건간 그렇게 교황무오가 당연하게 '모든' 성사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ㅇ천주교회 (교회론에서 개신교와 현격하게 차이가 큰 부분은 크게 달지 않았습니다.)

문 :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고 난 다음에 예수님의 사업은 어떻게 계속됩니까?
답 :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열두 제자를 선택해서 특별히 교육하시고 당신 교회를 창립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교회를 통해서 만방에 전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세우신 교회가 ‘천주교회’입니다.
답 : 그럼 사도 바올로는 헛품을 팔게 된 것입니다.

문 : 예수님은 교회를 몇 개나 세우셨습니까?
답 :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예수님도 한 분이시고 진리도 신앙도 하나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인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다른 기타 그리스도교 종파는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에서 갈라져 나간 것입니다.
답 : 다른 교회(종파)들도 다 자기들만이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라고 주장합니다.


- 개신교에서도 그리스도인이면 하나의 교회 공동체(에큐메니칼 공동체)로 봅니다. 교단의 차이가 있는 것이지, 교회가 아니라고 한다고 볼 순 없습니다. 예수의 부활과 이를 믿는 개인의 구원에 대한 신앙이 있는 자에 대해선 교회임을 부정할 수는 없어요. 다만, 그 방법이 조금 다른 것입니다. 

문 :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셨다는 구체적인 성경 말씀이 있습니까?
답 :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천주교회는 성령강림날 출범했습니다.
답 : 정말로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라면, 지금 이 땅에는 기독교가 올 수 없었거나 아니면 남자들은 모두 할례의 예를 받아야 했습니다.

문 :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 예수님이 가르치신 진리를 만인에게 전하여, 세상 끝날까지 당신 구원사업을 계속하기 위해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답 : 일단 동의해 드리죠. 이것마저 부정하면 토론 자체가 의미없으니까요.

문 : 천주교회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
답 : 크게 두 가지 모습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조직의 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은총의 교회입니다.
답 : 성당이나 교회나 할 것 없이 전자만 추구하고 후자는 말로만 하는 것 같습니다. 유럽의 아름다운 성당들은 백성의 고혈이며, 한국의 대형교회는 협잡의 결과입니다.


- 좋은 지적입니다. 다만, 개신교에서는 교회론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습니다.

문 : 조직의 교회는 어떤 모습입니까?
답 :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모았고, 그 중 베드로를 교회의 우두머리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이 교회의 으뜸이 됩니다. 다른 열한 제자의 후계자는 오늘의 각 지방 주교들입니다. 그리고 주교를 도와서 각 지방에서 사목하는 이들이 사제들입니다. 그래서 천주교회는 교황, 주교, 신부 그리고 평신도로 조직되어 있습니다.
답 : 예수님은 이런 체계를 세우신 적이 없습니다.


- 개신교에서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위계적 질서와 하늘의 위계질서간의 일치성을 말합니다.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길 너는 땅에서의 열쇠를 가진즉, 네가 땅에서 결박하면 하늘에서도 결박될 것이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성하께로부터의 최고의 징계인 파문이 그래서 무서운 것입니다. 사도성을 계승한 교황성하께서는 곧 베드로의 열쇠를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문 : 은총의 교회는 무엇입니까?
답 : 교회가 순수하게 인간의 단체라면 하느님의 구원을 주는 기능이 없습니다. 인간의 조직이지만 그 조직을 통해서 하느님의 구원은총을 전해주는 은총의 기능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의 은총을 주는 교회의 기능을 은총의 교회라고 합니다.
답 : 구원받았다는 착각만 줍니다.

- 성사, 인생종말, 교회법, 세상종말은 따로 달지 아니하였습니다. 개신교와 너무 차이가 크게 나는 부분이고 잘 모르는 부분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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